행정기관과 개인간 분쟁 발생하면
관련기관 모두 참여 분쟁 일거해소
성립땐 법적효력도 부여돼 큰 도움
인간사에서 갈등은 일상이다. 성가시지만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이 먼저 재판을 떠올린다. 소장을 작성해서 법원을 찾아 명쾌한 결론을 받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판사는 당사자를 불러 판결은 하지 않고, 뜻밖에 조정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한다. 왠지 판사가 상대편을 편들려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재판하기 싫어서 저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판사는 소송을 통해 분쟁을 소모적으로 이어가기보다는 서로 양보해서 원만하게 갈등을 해소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조정은 민사나 가사뿐만 아니라 행정에서도 나타난다. 일례로 영업허가 취소를 받은 사람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영업정지 정도의 중간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쌍방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행정분쟁에서도 조정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국민권익위원회도 하고 있다고 하면 신기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부패방지권익위법 제45조는 조정에 관해 ‘권익위원회는 다수가 관련되거나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다고 인정되는 고충 민원의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에 의하여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조정이 성립되면 민법상 화해와 같은 법적 효력이 부여된다.
물론 권익위는 행정청과 개인 사이의 분쟁을 다루는 기관이라서 민사나 가사 분쟁에 대해 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행정분쟁에서만큼은 조정을 통해 법원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복합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법원의 분쟁은 대개 쌍방 구도이기 때문에 행정청이 개인에게 한 행정처분을 기준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권익위는 하나의 행정분쟁이 발생하면 관련된 모든 행정기관을 참여시켜서 다방향에서 분쟁을 일거에 해소하는 장점이 있다.
일례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폐기물처리나 장례 시설 등과 같은 것을 설치하려는 경우에 이 개인은 해당 시·군·구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환경부로부터 환경영향평가를 받거나, 산림청으로부터 국유림 보존지역 해제를 받거나, 국방부로부터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를 받아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 광역지자체나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때가 있다. 때론 인근 주민의 저항에 부딪히기도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필요 시설을 설치하려는 장소에 이런 제약이 모두 걸쳐있다면 그는 여러 건의 송사를 벌여야 할지 모른다. 아마 소송만으로도 수년의 세월을 보내야 할 게다. 권익위는 이러한 사안에서 우선 조사관을 현장에 파견해 상황을 파악하게 하고 연관된 모든 행정기관을 참여하게 한다. 그 후 적당한 해법을 고안하고 이를 신청인과 관련 기관들에 모두 제시해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조사관들은 관련 당사자들을 접촉하며 의견 조율과정을 거치며 최종적인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하여 마련되는 조정 결과는 신청인과 관련 행정기관을 모두 구속하는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된다.
권익위가 이러한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한 예로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민원, 울진 신한울원전 부근 죽변 비상활주로 폐쇄 민원, 포항 수성사격장 관련 민원, 태안 안흥진성 개방 민원, 서울 종로구 송현공원 부지 민원 등 헤아리기 어렵다. 지금도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이러한 권익위의 조정제도를 활용한 분쟁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다소 생소하기는 하나 지극히 효율적인 국민권익위 조정의 활용은 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된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