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반도의 숱한 정복전쟁으로
로마신전이 교회로 다시 모스크로 개조
오늘날의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
모스크 속 성당, 기묘한 개조 이뤄지며
모스크 건축의 규범과 미학 사라져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넌 이슬람군(아랍과 무어인의 연합군)은 불과 3년 만에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며 기독교 세력을 오늘날 프랑스 땅까지 몰아냈다.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에 알 안달루스(Al-Andalus)라는 나라를 세우고, 그 수도를 코르도바(Cordoba)에 두었다. 북부 지방을 제외한 반도 전역이 이슬람의 통치를 받았으며, 그 중심에 코르도바가 있었다.

한편 중동의 이슬람 제국은 왕위계승의 정통성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분열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복 전쟁으로 복속된 지역에서 각기 독립적인 왕조를 세우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베리아 반도의 알 안달루스도 독자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10세기경 드디어 독립을 선포하면서 코르도바 칼리파 왕국(Caliphate of Cordoba)을 건국한 것이다. 칼리파는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종교적 최고지도자이니, 중세 가톨릭 세계의 교황에 해당하는 지위라 볼 수 있다.

새 칼리파에게는 그 위상에 걸맞은 왕궁과 모스크가 필요했다. 그들은 새로운 모스크를 짓기보다는 기존의 건물을 증개축하기로 결정했다. 실상 기존의 모스크도 이미 기구한 사연을 거쳐 온 건물이었다. 원래 로마 신전이 있던 자리에 서고트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세웠고, 8세기에 들어 온 이슬람인들은 이 교회를 모스크로 공유했다. 이후 기독교 세력이 축출되면서 교회를 매수하고, 본격적인 모스크를 짓기 시작했다. 이마저 코르도바의 성장에 따라 여러 차례 확장, 개축되면서 칼리파의 대모스크로 변신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코르도바를 재정복하면서 다시 성당으로 개조된 것이다. 오늘날 ‘코르도바 모스크-대성당(Mosque-Cathedral of Cordoba)’라는 기묘한 이름도 그 기구한 역경을 함축한다.

초기 모스크의 모습은 정사각형의 대지에 중정과 기도실을 배치한 단순한 평면이었다. 9~10세기에 이르는 동안 수 차례 확장을 거듭했는데, 10세기 말에는 가로 199m, 세로 169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확대되었다. 당대에 이라크의 압바스 모스크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가 만들어진 것이다. 건축형식도 고급스러움을 더해 갔다. 교회 기둥을 재사용했던 초기의 모습에서 아라베스크와 무어식 건축의 화려함이 입혀졌다. 그들은 아랍과 비잔틴, 무어 양식을 아우르는 당대 최고급의 건축 요소들을 혼합시켜 새로운 건축양식을 구사했다. 이는 새로운 칼리파 국가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는 기념비적 프로젝트라고 할 것이다.

▲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 내부 모습.
▲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 내부 모습.

코르도바 대모스크로 들어가는 문은 의외로 소박하다. 9세기의 건축양식이 남아 고색창연하다. 벽체 중간에 아블라크 문양(어두운색과 밝은색 돌을 교차로 사용하는 문양)이 있는 말굽형 아치 속 작은 목제 문이 고작이다. 처마장식이 없었다면 출입구라고 인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 흔히 사용하는 이반(Ivan)형식의 대문과 다르다. 이반 형식은 돌출된 사각형 입면에 큰 아치를 반구형으로 움푹 파고 들어간 대문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중정에 들어서면 별천지가 펼쳐진다. 야자수와 오렌지 나무가 무성한 정원으로 꾸몄다. 모스크의 중정을 정원으로 꾸민 사례는 보기 드물다.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중정에 과실수를 심었다는 기록이 9세기 문헌에 등장한다. 이를 근거로 중정에 식재한 가장 오래된 사례로 손꼽힌다. 이 또한 이베리아에서 나타난 독특한 현상이라고 봐야겠다.

기도실로 들어서면 어마어마한 기둥들로 이루어진 내부공간에 기가 질린다. 사방으로 끝을 알 수 없도록 늘어선 기둥 열들은 방향감각을 마비시킨다. 마치 무성한 야자수가 열 지어 숲을 이루는 모습이다. 붉은 대리석 기둥 위에는 코린트 식 주두에서 진화한 무어식 주두가 화려하다. 기둥 위에 아블라크 문양으로 장식된 말굽형 아치를 2층으로 구성해 천장을 받친다. 단부에는 다엽형 아치를 서로 교차시켜, 마치 야자수의 가지들이 서로 얽혀있는 모습이다.

미흐랍 구역(성소)은 모스크 내부공간의 절정이다. 여타의 사원과 달리 이 모스크에서는 미흐랍 공간을 기도실과 구획해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를 마크수라(Maqsura)라고 하는데, 지배자의 기도 공간으로 사용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3칸으로 구성되며, 중앙 칸에 미흐랍을 두었다. 바닥은 비잔틴 제국에서 파견된 전문가가 만든 비잔틴 문양의 모자이크 타일이 깔렸다. 섬세한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찬란하게 장식된 벽면으로부터, 조개 껍질 모양의 큐폴라가 겹치는 돔 천장으로 마감된다. 온통 금박으로 휘황찬란한 내부공간은 분명 이슬람 문명의 보석함이다. 유럽인들조차 “눈부시게 아름다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건축”이라고 찬탄했다.

그러나 코르도바를 재정복한 기독교인들에게 이 모스크는 이교도의 종교시설일 뿐이었다. 제거의 대상이었지만 이 모스크를 통째로 부수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모양이다. 대신 기도실 안을 성당으로 개조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14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기도실 변으로부터 중심부까지 기독교 예배실들이 차례로 들어섰다. 모스크 속에 성당이 들어선 기묘한 개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모스크는 이슬람 건축양식의 박물관 안에 기독교 예배당을 전시하는 생경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모스크의 열주는 복도가 되어 각 예배당을 연결한다. 예배당의 양식들도 건립시기에 따라 다양하다. 왕실 장례 예배당(Capilla Real)은 무어식 건축요소를 기독교 건축에 사용한 무데하르(Mudejar)양식이다. Villaviciosa Chapel은 15세기에 지어진 고딕양식이며, 중앙을 차지한 대성당은 르네상스 양식으로서 16세기에 지은 것이다.

높은 천정을 갖는 고딕건축의 웅장함이나 르네상스식 볼트 천정의 화려함은 기독교 건축의 양식적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모스크 건축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공간적 성격은 해체되어 부속물이 되어 버렸다. 알라 신의 안방을 차지한 여호와 신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격이다. 더구나 키블라 축(메카를 향한 축)을 가로막도록 성당을 배치함으로써 모스크 건축의 규범과 미학은 사라졌다. 찰스 5세(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왕)조차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축을 짓기 위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보물을 파괴했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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