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이는 어찌 저리 환할까 기웃거리다가, 드디어 비결을 찾았어요. 날마다 맑은 햇살 푸지게 담아 드시더군요. 설거지한 그릇 널어 바짝 말리고는, 마당에 그득히 쏟아지는 햇살 듬뿍듬뿍 받는 거예요.

햅쌀보다 맛나고 다디단 햇살들을요.

봄에는 봄 햇살, 여름에는 여름 햇살, 가을 겨울에는 갈겨울 햇살, 그릇에 넘치겠지요. 구름 그림자 놀다 가고 바람은 자고 가고 꽃 냄새, 두엄 냄새는 쉬었다 가겠지요

이보다 영양가 높은 곡식 달리 더 있을까요. 아무리 비우고 비워도 또 고봉으로 쌓이지요. 위봉산 넘어온 저 햇살들, 자연의 찬란한 햅쌀들.

함께 사는 소양이하고만 먹기 아까워서 여기저기 기별합니다. 냥이야 제비야 집 나간 모란아, 밥 먹으러 와. 내가 맛있는 햇살밥을 지었단다.

“햇살밥, 가장 흔하지만 가장 귀한 것…”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햇살밥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다가 <도덕경>의 ‘도는 텅 빈 그릇과 같아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다.’는 구절이 생각났다. 햇살밥이 이 텅 빈 그릇과 같은 게 아닐까. 햇살이 담긴 하얀 사기그릇은 텅 빈 것 같지만, 또 가득 채워져 있어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고 아무리 채워도 넘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햇살밥은 정말 흔하고도 귀한 밥이다. 햇살은 천지사방으로 넘쳐나니 흔하디흔한 것이지만, 햇살이 없으면 천지만물이 나고 자랄 수 없으니 귀하디귀한 것이기도 하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햇살이 있어야 우리가 산다. 쌀도 햇살이 있어야 만들어진다. 그래서 햇살이 밥이다. 밥이 햇살이다. 햇살은 늘 새로워서 햇쌀, 그러니까 햅쌀이기도 하다. 마침, 햇살과 햅쌀은 소리도 비슷하다.

이 시의 미덕은 햇살밥을 같이 먹자고 여기저기 기별하는 데 있다. ‘냥이야 제비야 집 나간 모란아’ 하고 시인은 이웃을 불러 모은다. 이 별난 호명. 사람도 아니고 고양이, 제비, 모란이라니. 모란이는 누굴까? 강아지? 어쨌든 이런 뭇짐승들하고도 기꺼이 밥을 나누려는 시인의 마음 씀이 곱다. 햇살처럼 푸지다.

송은숙 시인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