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눈으로 고난에 처한 중생을 빠뜨리지 않고 다 보아 주시고, 천 개의 손으로 어떤 중생의 상처도 다 어루만져 준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거나 어려울 때 관세음보살을 찾는다. 관세음보살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보살이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이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자신도 절대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것이 누군가 죽었을 때 남은 사람들이 절을 찾아서 지장보살을 외치는 이유이다. 현실의 죄나 고통을 없애 주는 보살로서는 관음보살이 으뜸이고 죽은 뒤의 육도윤회나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구제해 주는 데는 지장보살이 으뜸이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의 천 개 눈과 손은 바로 우리 자신의 눈과 손, 그것도 하루 동안에도 달라지는 우리의 눈과 손이다. 관세음보살의 천 개의 손과 눈은 중생의 천 개의 손과 눈이 모두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세음보살은 우리의 하루가 우리의 일생이 오롯이 부처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성불하기를 거부하고 중생의 고통을 헤아리는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중생 모두가 스스로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많은 사람이 절을 찾았고 많은 사람이 부처님께 빌면서 행복을 바랐다. 그런데 부처는 당신 앞에서 빈다고 소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나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나 자신이며, 나를 극락으로 가게 해주는 것도 나 자신이다. 현세에서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고통이 없어질 수도 있고 내가 극락에 갈 수도 있다. 그런 내가 부처님을 찾는 것은 그들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달라고 바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 앞에서 무엇이 되겠다고 다짐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마음속에 부처를 지니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은 부처가 될 수 있다.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도 처음에는 사람이었다. 우리도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하고 지장보살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나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바랄 게 아니라 그들 앞에서 나도 그들의 마음으로 살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짐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절을 찾는 이유여야 한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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