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봄의 색에도 순서가 있다. 납매, 복수초, 산수유, 황매와 같은 노랑에서 시작해 벚꽃, 복사꽃의 분홍이 뒤를 따른다. 오월이면 조팝나무, 이팝나무, 덜꿩나무, 불두화, 아까시나무, 고광나무, 층층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의 하양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봄의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저절로 일어난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색채는 차가운 겨울을 이겨낸 우리에게 주는 근사한 선물인 듯하다. 꽃은 어떻게 제 몸에 이토록 아름다운 물감을 칠하는 것일까.

꽃이 보이는 다양한 빛깔은 꽃잎에 들어있는 카로티노이드,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색소 물질 덕분이다. 카로티노이드계는 노랑, 주황, 주홍의 색을 낸다. 플라보노이드계는 크림색에서 노란색을 내는 안정적인 플라본과 불안정한 안토시아닌계로 나뉜다. 안토시아닌은 리트머스 종이처럼 세포의 pH 농도에 따라 색을 바꾸는데, 산성에서 빨강, 알칼리성은 파랑, 중성일 때는 보라색을 띤다. 이외에도 드물게 보이는 베타레인과 잎의 초록색을 만드는 클로로필도 있다.

그렇다면 흰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흰 꽃에는 색소가 없어 투명하지만, 꽃잎 내부에 있는 작은 기포들 탓에 희게 보인다.

▲ 백당나무
▲ 백당나무

봄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빛을 살피며 최근에 관람한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1세대 정원가 정영선의 작업을 기록한 <땅에 쓰는 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어울려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정원은 인위적인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땅에서 자란 우리 식물이 가장 중요한 오브제였다.

문밖을 나서면 햇살이 산란하는 곳마다 오월이 제 모습을 한껏 뽐내고 있다. 나무는 나무대로, 풀꽃은 풀꽃대로 지닌 의미를 발산하는 중이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 초록 물결이 가득하다. 이스라지, 병아리꽃나무, 할미꽃, 금낭화, 큰산꼬리풀, 오이풀…. 익숙하면서도 잊고 지내던 우리 꽃, 우리 나무. 궁굴린 마음을 실어 땅에 아름다운 시를 쓰는 조경가의 마음이 우리와 다를 것이 무엇일까.

흐르는 모든 시간이 감사한 오늘, 다큐멘터리의 맨 처음에 들리던 나바호 인디언의 노래를 떠올린다. ‘내 앞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내 뒤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나는 여전히 아름다움의 자취 위를 맴돌리니.’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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