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아닌 한국에 태어난 것만으로 기적
인류 존망의 기로, 초불확실성의 시대
감사의 마음으로 기적같은 행복 누려야

▲ 임진혁 UNIST 명예교수 전 울산연구원 원장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유고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자신의 삶을 기적에 비유하고 있다. 생후 1년 만에 겪은 소아마비로 인한 1급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후 영문학자로서 또한 대중에게 인기 있는 수필가로 활약했다. 암 판정을 세 번씩이나 받고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57세로 2009년에 생을 마감했다. 기적(奇跡)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어떤 일이 기적이라 불리려면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첫째, 확률이 매우 낮아야 하고, 둘째, 좋은 일이어야 한다. 금년 2월 인도네시아의 한 축구선수가 경기 중에 벼락을 맞아 사망했다. 희귀한 사건이지만 나쁜 일이므로 기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금년 4월 미국에서 1조 8000억원에 달하는 복권 당첨 사례가 나왔다. 1등 당첨될 확률은 2억9220만분의 1이므로 기적 같은 일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기적이란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고 흔쾌히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났고 여타 동물들처럼 수렵 채집 생활을 하다가 약 1만 년 전에 농업을 시작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해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19세기 후반에 전기와 내연기관이 발명되면서 2차 산업혁명으로 진화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3차 산업혁명을 촉발했고 21세기 접어들면서 4차 산업혁명과 AI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은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 이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세대는 한 생애 안에서 이 거대한 문명의 발전을 직접 목격하고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기적적이라 할 수 있다. 홍콩과기대의 김현철 교수에 의하면 수도권과 강원도의 출생자 중에서 1951년생이 비슷한 연령대에 비해 전문직과 비숙련 노동자의 비율이 확연히 뒤바뀐다. 배 속에서 한국 전쟁을 더 참혹하게 겪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한다. 동년배이지만 타지역에서 태어났기에, 이 같은 현상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므로 엄청난 행운이며 따라서 기적적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혹은 병자호란 등의 고초를 겪은 선조들은 차치하고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으로 오는 탈북자들을 보면 지금 여기에 사는 것이 기적적이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기적적인 요소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의 삶은 어떨까? 우리는 인류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세대이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란 예측이다. 2016년 알파고가 예상을 깨고 이세돌 9단을 격파했을 때만 해도 제한적인 용도에 국한될 줄 알았던 인공지능이 이제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려 한다. 2022년 11월에 발표된 ChatGPT 3가 2023년 3월에 ChatGPT 4 그리고 금년 5월에는 ChatGPT 4o로 업그레이드되었고 여름에는 ChatGPT 5가 나올 것이라 한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의사소통하는 범용 인공지능이 공상소설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이 2045년경에 도달할 것이란 예측이 있는데 요즘의 발전 추세로 볼 때 더 빨라질 것이라고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장차 인간은 호모 데우스 즉 신이 된 소수의 인간과 쓸모없는 다수의 인간으로 나뉠 것이라 한다. 인공지능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하기야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 위기, 핵전쟁 위험 등으로 인해 인류의 존망이 기로에 놓인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인간의 긴 역사에서 우리 세대가 최고의 정점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오늘은 사는 하루하루가 기적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적의 2가지 요소에 ‘감사하는 마음’을 추가하면 그 기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임진혁 UNIST 명예교수 전 울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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