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1962년 특정공업 지구 선정 이후
성장 일변도 정책에 많은 것 잃어버려
울산의 어제와 오늘 지키는 노력 필요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 ‘전일빌딩’에 있다. 전일빌딩은 1980년 5월 광주, 뜨거웠던 금남로의 랜드마크였다. 5·18민주화운동의 시민군이 저항하던 장소였고, 당시 군부 계엄군의 헬기 사격까지 있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노후화로 한때 철거 위기까지 몰렸지만, 지금은 리모델링을 통해 광주 문화예술의 시민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개발 위주의 논리로 철거를 밀어붙였다면 사라졌을 현장이, 많은 사람이 찾는 광주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전일빌딩은 지금 ‘전일빌딩245’란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245는 전일빌딩에 남아있는 계엄군의 총탄 흔적의 개수이기도 하다. 전일빌딩은 1968년에 1차 완공된, 56년의 지난 세월을 견딘 건물이다. 지상 10층 지하 1층 건물로 광주도시공사의 소유로,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을 정도다. 다시 태어난 전일빌딩 외부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내부는 사무실 용도가 아닌 시민들을 위한 문화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전일빌딩은 지하 1층부터 4층까지는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부러울 정도다. 5층부터 7층은 문화 콘텐츠 창작 공간으로, 9층과 10층은 5·18 기념 공간이다. 8층과 옥상은 휴게 공간이며, 옥상 공원인 ‘전일마루’에서는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이 보인다.

전일빌딩245의 건물 외벽을 자세히 보면 주황색 점들이 많이 찍혀있는데 모두 총탄 자국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 전일빌딩245가 광주에 남아있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상처는 감추고 싶어 하는 일로 그 빌딩을 철거했다면 역사의 장소가 사라졌을 것이고, 광주의 새로운 명소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113㎞ 떨어져 있는 곳에 론다란 도시가 있다. 산악도시인 론다는 해발 780m 고지대로 협곡과 절벽을 끼고 앉은 도시다. 이 론다는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누구를 위하며 종을 울리나’의 무대가 된 곳이다. 실제로 헤밍웨이는 그의 나이 37세 때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의용군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협곡과 절벽의 도시인 론다에는 독특한 다리가 있다. 깊은 협곡을 이어 만든 ‘누에보 다리’가 그것이다. 이 누에보 다리 주변으로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스페인풍의 주택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그 주택들의 끝 쪽에 오렌지색 이층집이 있는데, 그곳에 헤밍웨이가 소설을 쓰며 산 곳이다.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서 많은 관광객이 그 집을 찾아간다.

만약 론다가 밀려드는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 집을 밀어버렸거나 새 건물을 올렸다면, 스페인은 역사적인 명소이며 소중한 관광자원 하나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소를 평화기념관이란 이름으로, 원폭이 투하된 1945년 8월6일을 아직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치욕스러운 역사지만 그 보전을 통해 일본은 거듭나고 있다.

울산은 국내 최대의 공업도시다. 5·16 군사 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1962년 1월27일 특정공업 지구로 결정된 이후 50년 이상 수직상승의 시간을 달려온 도시다. 그 성장의 뒤편으로 많은 것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지금에 이르러 주변을 돌아보면 잃어버려 아쉬운 공간과 장소가 참 많다.

이제부터 ‘울산다운 것’을 지키는 일에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울산의 어제와 오늘을 지켜 울산의 내일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다. 행정은 울산다운 것을 지키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잃어버리면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 사라지는 시간에 있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혜롭게 지켜 울산의 타임캡슐로 삼아야 한다.

어디 사라져서 아쉬운 것이 가수 최백호가 부르는 노래 속의 ‘낭만’만이 아니다. 그 시대 그 사람들이 모여서 낭만을 만들었던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도 소중한 자산이고 ‘도라지 위스키 한 잔’도 남아있게 지켜야 한다. 다시 못 올 것을 지키기 위한 일에 ‘울산학(蔚山學)’이 있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