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손가락은 옛날에
탕약 젓던
손가락이라 해요
약 손가락
무명지는 무명지,
이름 없는 손가락
눈에 잘 안 띄는
그냥 넷째 손가락

나는 넷째요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
우리 집 노인이 저도 모르게,
열심열심 깨무는 치매의
넷째 손가락
많이 아프진 말아야지
자꾸 깨물리진 말아야지 하며,
약처럼 약속처럼 남은 생은
당신과 나아보고 싶어요

오늘 밤 피가 지나가는 당신 무명지에
외반지를 끼우며
우리, 이름 없기를
피프티
오늘 밤 당신이 내 무명지에
끼우는 외반지
후생의 사랑 같은 사랑의 후생 같은
피프티,
이름은 없기를

거창한 이름없어도 족한 가족사랑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가운뎃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사이에 있는 넷째 손가락은 약을 젓는 데 사용했다고 해서 약지라고도 하고 서양에서는 반지를 끼는 손가락(ring finger)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말로는 그저 넷째 손가락, 별로 대수롭지 않은 손가락이라고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무명지이다.

시에서 ‘나’는 넷째 손가락 같은 존재이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일은 가장 사랑을 필요로 하면서도 사실 가장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이름 없는 일. 하지만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법. ‘나’는 노인의 약 수발을 들면서 ‘당신과 나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병이 낫고 관계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 ‘나아보다’는 조어에 들어 있다.

그래서 이제 서로의 손가락에 외반지를 끼우려 한다. ‘피프티’, 또 ‘피프티’. 50과 50이 합쳐 100이 되듯, 외반지가 합쳐 쌍가락지가 되듯 무명지에 반지를 끼우는 일은 서로의 사랑, 육친애를 확인하는 일이다. 거기에 이름은 없어도 좋다. 대체 사랑에 무슨 이름이 필요하랴.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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