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문으로 들어가면 휘발유 냄새가 난다

성곽 외벽 다래넝쿨은 염색 잘하는 미용실을 찾아나서고 있고

백일홍은 장례 치르지 못한 여치의 관 위에 기침을 해대고 있다

도라지꽃의 허리 받쳐주던 햇볕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기별이다

방방곡곡 매미는 여름여름 여름을 열흘도 넘게 울었다지만

신발 한 짝 잃어버린 왜가리는 여태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

한성부 남부 성저십리(城底十里)의 참혹한 소식 풀릴 기미 없다

시 두어 편 연필 깎듯 깎다가 덮고 책상을 친다

오호라, 녹슨 연못의 명경을 건져 닦으니 목하 입추다

찜통같은 더위 속 어느덧, 입추다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곧 입추다. 찜통더위에 벌써 입추라니 믿기지 않을 지경이지만, 원래 엽록 속에 카로틴이니 안토시아닌이니 하는 단풍 색소가 들어있는 것처럼 폭염 속에 입추가 숨어 있는 것도 계절의 이치 아닐까. 어쨌든 입추를 생각하니 폭포수에 손을 담근 듯 아주 잠깐 시원한 것 같다. 그리고 입추가 지나면 바람끝이 서늘해질까, 모기는 덜 달려들까, 공기는 좀 보송보송해질까, 우리를 괴롭히는 무더위와 습기의 저 반대편 끝을 상상해본다.

아무리 덥더라도 입추 무렵이 되면 견고한 폭염의 방벽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휘발유 냄새 같은 더운 기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래 넝쿨은 가을빛을 불러낼 채비를 하고, 백일홍 붉은빛도 무언가 바랜 느낌이다. 맹렬하던 햇볕도 한풀 꺾여 한결 다소곳하다. 한쪽 발을 든 왜가리 모습을 신발 한 짝 잃어버렸다고 표현한 게 재미있는데, 그 왜가리가 여태 한강을 건너지 못했으니 청풍 한 줄기에 날개의 방향이 도로 남쪽을 향하리라.

한성부 남부의 참혹한 소식은 무엇일까. 등반객으로 에베레스트 정상 근처가 극심한 정체에 시달리듯 여름의 대군이 후퇴하려던 차에 병목 현상을 빚은 것일까. 여름내 염제와 씨름하느라 땀으로 얼룩진 거울, 잘 닦아 마음 한 자락 비춰보노니 어느덧, 입추다.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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