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배롱나무를 본다
백년 동안 뿌리 내릴 곳을 찾는다는 그늘을 본다

시 한 구절이 작게, 굽은 등을 하고
내 빈 종이를 들여다본다

한 발로 서 있는 새가
물에 빠진 바닥을 찍어 올리듯

시 창작은 희로애락을 하염없이 써내려가는 일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한여름에 활활 타올라 녹음에 불티가 날릴까 다시 돌아보게 되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을 너끈히 비웃어 주는 저 석 달 열흘 붉은 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보는 배롱나무는 오래오래 피는 배롱나무꽃처럼 오래된 인연과 관계를 말하는 것일 거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나를 가족을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삶”을 “시”라고 하였으니, 사람 사이의 배롱나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시적 소재다. 배롱나무는 빈 종이에 적힐 시 한 구절이 될 터이다.

굽은 등을 한 시 한 구절과 한 발로 서 있는 새가 대응된다면 시를 쓴다는 것은 새가 물에 빠진 바닥을 찍어 올리듯 하염없이 빈 종이를 물들이는 일. 어쩌면 도로(徒勞)에 가까운 수고. 떨어지는 돌을 끊임없이 다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백 년 동안 뿌리 내릴 곳을 찾는다는 정처 없는 그늘처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게, 굽은 등을 한 시 한 구절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배롱나무꽃 주름의 갈피 갈피에 삶의 희로애락과 이비(理非)가 늦매미 울음처럼 숨어있을 터인데.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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