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문화가 꽃을 피운 이면에는
문화와 문화인 뒤에서 문화를 만들고
실력과 열성과 열정을 맘껏 쏟아내고
거짓과 가짜를 분별하는 안목을 가진
수많은 기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이들의 열정과 애씀에 거듭 감사

▲ 문영 시인·평론가

내가 경상일보를 구독한 것은 창간호부터다. 첫 칼럼도 경상일보가 창간한 1989년에 실렸다. 내 스크랩북에 담긴 ‘교정을 거닐며’(1989년 6월1일)라는 제목의 글이 그것을 말해준다. 창간 2주년에 ‘함월산, 목도 그리고 암각화’라는 축시를 게재함으로써 경상일보와의 연이 이어졌다. 문화부 기자들과 어울리면서 신문의 꽃은 문화면이라는 의견에 적극 찬동했다. 그들의 호의로 여러 편의 칼럼과, ‘시가 있는 월요일’이란 시평을 1년간 연재했다. 이후 글의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경상일보에는 문화부 친구들이 많다.

곽종렬 기자는 내 첫 시집 ‘그리운 화도’ 인터뷰와 기사 때문에 만났는데, 순수하면서 열정인 태도가 좋았다. 그와 의기투합해서 하고자 했던 동해남부 해안과 포구 답사는 그가 다른 직업을 택함으로써 이루어지지 못했다. 서대현 기자의 글은 치밀하면서 깔끔했다. 세 번째 시집 ‘소금의 날’에 대한, 그의 글이 그렇다. 내가 윤동주 시인이 외솔 최현배에게 배웠다는 기록을 보여주었을 때 꼼꼼하게 취재한, 그의 글이 대서특필되어 전국에 알려졌다. 경상일보 문화부 기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도 다른 언론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명숙 기자는 문화에 대한 넓고 깊은 안목, 기획과 아이디어를 만들고 제공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2007년 당시 정명숙 국장이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기획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탐방’은 1년간 연재되면서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중앙지에서도 하기 힘든 기획물을 만들어 내었는데, 여기에 참여한 필자의 글과 임규동 부장의 감각이 빛나는 사진이 더하여 문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발로 뛰는 임규동 부장과, ‘발로 읽는 열하일기’라는 제목을 달아준, 필자의 책은 정명숙 국장과 임규동 사진부장의 도움 결과물이다.

이 책은 관심 있는 마니아들에 의해 전국에 돌아다니고 있다. 정명숙의 글은 잘 짜진 문장에 적확한 어휘를 구사한다. 탐구한 대상이나 논의할 내용을 쉽게 말한다. 내가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적확>이란 칼럼집은 울산 보고서란 부제를 달고 있다. 나는 그 책에서 도서관과 미술관, 암각화에 대한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이재명 논설위원의 ‘계절 한담’은 짧지만 유쾌하고 멋있다. 적재적소에 시를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내가 애독하는 이유다. 김창식 논설실장의 글은 순발력 있고 요체를 짚어내는데 뛰어나다. 두 사람 모두 울산 지역 문화통이다.

▲ 성루에서 본 사마다이 장성. 2008년 7월15일자 ‘발로 읽는 열하일기-- 2부’ ‘역사적 비경에 가려진 인간의 헛된 욕망’편
▲ 성루에서 본 사마다이 장성. 2008년 7월15일자 ‘발로 읽는 열하일기-- 2부’ ‘역사적 비경에 가려진 인간의 헛된 욕망’편

홍영진 기자(현 중구 구의원)의 글은 사실적이고 부드러우면서 산뜻하다. 미술작품에 대해서 조예가 깊었던 홍영진 문화부장은 내 문학 평론집 <변방의 수사학>을 한 면 전체에 소개했다. 이 글로 나는 평론가로 전국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네 번째 시집 ‘바다, 모른다고 한다’ 기사도 참하게 소개했다. 홍 부장의 기획과 제안에서 비롯된 ‘울산 화첩’은 ‘울산의 삶과 풍경’을 주제로 3년간 연재되었다. 처음에는 1년을 계획했는데, 독자와 시민들의 사랑 때문에 길어졌다. 울산 곳곳 특정의 장소를 선택한 뒤 글을 쓰고 최종국 화가가 그림을 완성해 지면에 실었다. 과분하게도 많은 사람의 응원과 상찬의 댓글이 달렸다. 홍 부장이 떠나고 이 글 연재를 마무리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은 전상헌 기자였다. 전 기자는 세심하고 진중한 사람이다. 그의 글도 그렇다.

▲ 백이와 숙제의 충절이 담긴 수양산 이제묘. 2008년 5월6일자. ‘발로 읽는 열하일기 - 2부 ‘백이·숙제의 충절, 해묵은 가치관 전락’ 편.  사진=임규동기자
▲ 백이와 숙제의 충절이 담긴 수양산 이제묘. 2008년 5월6일자. ‘발로 읽는 열하일기 - 2부 ‘백이·숙제의 충절, 해묵은 가치관 전락’ 편. 사진=임규동기자

내가 이렇게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그들이 온갖 간섭과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기자의 자세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사 글이 원고지에서 컴퓨터로 바뀌어 편리해졌지만 더불어 악플과 비난의 댓글 등도 늘어났다. 이런 것을 감내해야 하는 기자의 인내와 고충도 가중되었다.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거짓과 가짜’를 분별하는 안목과 능력을 가진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떠나가고 있기에 안타까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문화와 문화인의 뒤에서 누대로 문화를 만들고 누리는, 인간의 능력에 힘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문화부 친구들이 이 같은 일을 했고,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외면해 왔다. 그러므로 문인으로서 내가 울산을 이야기하고 문화를 말할 때 실력과 열성을 갖춘 경상일보 문화부 친구들과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울산 문화가 이만큼 발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싶었다. 부언해서 신문의 꽃이 문화면이라면 그 꽃을 잘 가꾸어 보여주고 가치를 알려주는 이는 문화부 친구들이다. 울산의 문화가 꽃밭을 이루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알려졌다면 이들의 열정과 애씀 덕분이라고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경상일보 지령 1만호 기념을 축하하면서 먼 훗날 2만호, 3만호…, 10만호에도 멋진 문화부 친구들이 호명되길 바란다.

문영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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