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코요테야, 코요테야, 내게 말해 줄래. 무엇이 마술인지? 마술은 그해의 첫 딸기를 먹는 것, 그리고 여름비 속에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구전 민요 ‘코요테의 노래’를 읽을 때마다 이파리를 흔드는 바람과 잠깐의 소나기를 상상한다. 무성한 풀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짓이긴 풀에서 뿜어 나오는 강렬한 초록 피의 냄새, 여름 언덕 위로 피어나는 무지개까지.

입추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지는 불타는 듯 뜨겁다. 거리에서 만나는 그늘 한 점, 잠깐의 바람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서늘하게 출발한 바람도 내 얼굴에 닿을 때쯤이면 햇빛 샤워로 후끈 달아올라 있기 일쑤지만, 그나마도 없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고맙다.

바람의 일이 참으로 많다. 바람개비를 움직이고, 전기를 만들고, 연을 밀어 올린다. 범선의 등을 밀기도, 날 수는 있지만 날갯짓을 할 수 없는 앨버트로스를 활공하도록 만든다. 비눗방울을 공기 중으로 풀어놓기도 하는 바람은 식물에게도 아주 중요하다.

향기를 옮기는 것은 바람의 일이다. 나무가 무성한 곳에 가면 꽃뿐만 아니라 열매, 줄기, 잎, 뿌리에서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을 맡을 수 있다. 바람을 따라 퍼지는 식물의 향기는 곤충을 유인하는 일을 한다. 박테리아나 곰팡이의 공격을 막아내는 살균작용, 자신만의 영역을 표시하기도 하고, 해충의 천적을 부르거나 보호향을 뿜기도 한다.

▲ 대나무의 이파리를 흔들어 노래하도록 하는 것도 바람의 일이다.
▲ 대나무의 이파리를 흔들어 노래하도록 하는 것도 바람의 일이다.

바람은 공기를 소통시켜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돕는다. 밀생한 잎 주변으로 바람이 불면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이동이 쉬워진다. 과습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증산작용이 잘되지 않을 때도 도움이 된다. 식물의 온도를 조절하고 나무를 흔들어 성장을 돕기도 한다. 기공을 덮은 먼지를 털어내는 것도 바람의 역할이다. 소나무의 꽃가루와 단풍나무의 시과, 민들레의 홀씨를 멀리 보내는 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한바탕 태풍 종다리가 훑고 지난 국가정원을 바라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태양이 내리쬔다. 산란하는 빛 아래서 이토록 무성한 초록이라니. 더위에도 초록은 제 일에 열심이다. 나무는 나무의 일을 하고, 바람은 바람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하다 보면 이 무더위도 곧 지나가리라.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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