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김진희씨 핸들러로 출전
트라이애슬론 PTS3 등급 10위

▲ ‘철인’ 김황태가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정호 트라이애슬론 대표팀 감독, 김진희씨, 김황태, 문재홍 매니저(왼쪽부터).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철인’ 김황태(47·인천시장애인체육회)가 사고를 당한 건 상견례를 한 달 앞둔 2000년 8월이었다.

김진희씨는 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가 고압선에 감전돼 양팔을 잃은 ‘예비 신랑’을 병시중하고, 예정대로 결혼도 했다. 이렇게 24년 동안 김진희 씨는 김황태의 곁을 지켰다.

김황태는 아내의 헌신 속에 ‘공식적으로 센강을 헤엄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도전과 의지로 패럴림픽을 빛낸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김황태를 3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만났다.

김황태는 지난 2일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PTS3 등급 경기에서 1시간24분01초를 기록, 11명 중 10위를 했다.

센강에서 750m를 헤엄치고, 사이클 20㎞, 육상 5㎞ 코스를 달린 그에게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센강을 헤엄쳐 나오는 것만으로도 목표를 이뤘기 때문이다.

김황태는 “사전 연습 때는 유속이 느렸는데, 본 경기 때는 더 빨랐다”며 “첫 번째 다리 부근 유속이 굉장히 빨랐다. 그 부분을 거슬러 올라갈 때 힘들었다. 모든 영법을 써봤는데 답은 배영이었다”고 떠올렸다.

두 팔이 없는 김황태는 자유형과 평영에 비해 느리고, 힘도 많이 드는 배영으로 헤엄치다 보니 근육에도 무리가 갔다. 사이클과 육상 기록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황태는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 지난해 사전 대회까지 두 번이나 센강에서 살아남았으니 만족한다”며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긴 하지만, 물이 생각보다 맑고 투명했다”며 웃었다.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파리 시내에서도 김황태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2000년 8월 사고를 당한 뒤 1년 동안 절망에 빠져 있던 김황태는 스포츠를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그는 패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육상, 노르딕스키,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에 도전했다. 그러나 쉽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예기치 못한 부상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두 팔이 없는 선수가 경쟁할 수 있는 스포츠등급 종목도 많지 않았다.

김황태는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도전이라는 심정으로 트라이애슬론 선수로 전향했다.

이번에도 아내 김진희씨가 김황태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김진희씨는 김황태의 핸들러(경기 보조인)다. 종목과 종목 사이 경기복 환복과 장비 착용 등을 돕는다.

트라이애슬론은 트랜지션(다음 종목 준비 과정) 시간을 기록에 포함한다.

2일 경기를 마친 뒤 김황태는 밝게 웃다가, 아내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김황태는 “아내가 부모님이 고생하신 얘기를 하면서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삶이 이기적이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아내는 항상 희생했다. 2007년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항상 주말에 나는 집을 비웠다. 딸에게도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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