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한복 여름바지에 저고리 하나만 걸쳐 입은 김일환과는 대조적으로 보였다. 한마디로 김일환의 차림새는 어김없는 시골촌놈이었다.

마츠오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김일환에게는 시큰둥하게 대했다. 김일환은 상관없다는 투로 마츠오를 흘끔 바라보기만 했다.

“먼저 와 있었군.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지?”

두서면에서 김일환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디 깊은 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는 남자라면 모를 수도 있지만 대로변에서 주막집을 하는 주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때는 김일환이 백운산 골짜기의 홍옥석 광산에서 얼씬거리기도 했다. 잘 알지는 못해도 그의 존재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조선에서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사내를 본적이 없네. 이 친구가 이곳에 오면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고 했네. 김상 어서 이야기를 해보게.”

나는 직감으로 김일환이 마츠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김일환이 빨리 대답을 못하자 마츠오가 다그쳤다.

“이야기를 해보게. 조선인들은 거짓말을 잘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앞에서 어설픈 거짓말을 해선 혼날 줄 알게.”

마츠오의 말은 다소 위협적이었다. 칼을 차고 오지는 않았지만 일본순사라면 함부로 대하는 조선인이 없었다. 마츠오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김일환의 얼굴 표정은 덤덤했다. 그는 어깨에 짊어진 망태를 벗어놓고 문양이 새겨진 암각화 앞으로 다가섰다.

“얼마 전에 조카가 이곳으로 소풍을 왔답니다. 두서국민학교 4학년이죠. 인솔교사는 일본인 야마다 선생이었답니다. 우리 조카 녀석이 선생에게 이 서석 그림이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답니다. 야마다 선생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우리도 모르는 내용을 어떻게 일본인 선생이 알았겠습니까.”

마츠오가 다그치기 전에 내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추렴조로 대답했다. 김일환은 목이 마르는 지 마른기침을 몇 번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모르겠죠.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면 모르는 건 모른다고 사실대로 말해야죠. 그런데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했는데요?”

“미개한 원시인들이 심심하니까 돌 벽에 낙서를 해놓은 것이라고 했답니다.”

“대답이 궁하니까 대충 둘러댔구만.”

“김선생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이 그림이 미개한 원시인들의 낙서 같아 보입니까?”

“글쎄요. 낙서라면 부드러운 흙바닥에 하지 이렇게 야문 바위에 하지는 않았겠죠.”

내가 대답을 했다. 마츠오는 턱에 손을 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당신은 이 그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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