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래 집에 사는, 어린 딸아이가 바닷가에서 몰래 들고 와 어느 구석에 놓아둔, 그리고 곧장 잊어버린 돌멩이가 되었고 돌멩이가 둥근 배를 부풀리다 커다란 한숨을 쉬다가,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처럼 냉장고 구석 곰팡이 슨 사과처럼 유행 지난 철학서나 읽으니, 차고 아름다운 말만 고르며 온종일 앉아 있다 보니, 딸아이는 어느새 자라나 책상 옆에 지층처럼 쌓인 문예지 속에서 내 수줍은 얼굴을 찾아낸다.

배고프지 않는 저녁, 나도 모르는 새 책상 위에 놓인 돌멩이들처럼 딸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써본다 천천히 썩고 닳아가는 세간 같은 이름들, 각지고 투명한 이름들, 녹아 발밑으로 흘러 긴긴 세월의 평행선이 될 이름, 말의 곶에 숨겨진 이름 모를 것들을.

언어를 조탁하는 시인의 간절함 성찰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간절곶이란 ‘이름’을 빌어 시 쓰기나 시의 역할에 대해 성찰해보는 시이다.

1연에선 시인의 시인 되기 과정이 표현된다. 시인은 자신을 딸아이가 주워온 돌멩이라고 한다. 그 돌멩이는 바닷가에서 주워왔으니 파도의 철썩임, 바닷새의 지저귐 등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멩이는 침묵과 사색의 상징일 터. 시인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것을 표현할 아름다운 말을 고르다가 마침내 시인이 된다.

2연에선 ‘이름’에 대한 사유가 두드러진다. 이름이란 다른 것과 구별되는 그 고유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구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것에 개성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것은 시를 쓰는 일과 같다, 시인이란 숨겨진 이름 모를 것을 찾아 그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존재이다.

그 명명에서 ‘말의 곶’을 이해할 수 있다. 천천히 썩고 닳아가고 각지고 투명하고 녹아 발밑으로 흐르는 것들을, 긴긴 세월 지극히 정성스럽고 절실하게 찾아 호명하는 행위의 간절함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제목이 월곶이나 호미곶이 아니라 간절곶임은 이런 까닭일 것이다.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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