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1948년 건국’ 주장은
역사 왜곡을 통한 ‘족보 세탁’에
대한민국 정체성 비틀기 다름없어

▲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1948년 건국절 주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무렵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교과서’ 파동으로까지 번졌으나, 문재인 정부 때는 기세가 한풀 꺾인 듯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와 그런 주장이 더욱 과감해지면서 사회 전체를 흔들고 있다.

물론 역사적 인물 평가나 사건 해석은 다양할수록 좋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을 왜곡하고 모종의 사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특정 평가와 해석이 타당한지 따져보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며 의무다. 그런 점에서 논란이 된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1948년 건국절 주장의 문제점과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인가? 이승만은 해방 직전까지 미국 정부를 상대로 펼친 외교에서 ‘한국임시정부의 워싱턴 한국위원부 대표’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그는 이 직함으로 미국 국무장관과 대통령에게 수차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과 대일전 참전, 전후 처리 과정 및 관련 국제기구 참여를 요청한 바 있다. 1945년 7월21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에서는 한국임시정부 승인이 필요한 이유 하나를 “전후…. 한국에서 내전 발발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은 한국임시정부 승인 외교의 논리적 연장선에서 정부 수립과 군정권 이양, 그리고 새로 수립된 정부의 국제적 승인에 몰두했다. 우여곡절 끝에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12월12일 유엔은 그 정부를 승인했다.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이 마침내 ‘독립’된 것이다. 이승만은 해방 정국에서 ‘건국’이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고 ‘독립’이란 용어만 사용했다. 건국과 독립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이 아니라는 의미다.

둘째, 1948년 건국절 주장은 타당한가? 1948년 당시까지 이승만조차도 사용한 적이 없는 ‘건국’이란 용어를 뉴라이트는 굳이 사용한다. 그들은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 옳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왜 북한은 ‘국가’ 수립이라 하느냐?”며 색깔을 씌운다. 그리고 건국절 주장이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친일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공격에 대해서는, 1919년에서 1948년까지를 ‘건국의 과정’으로 보자는 절충안을 내놓는다. 그런 인식은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에도 담겨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1948년은 신정부 수립의 해이자 국제사회가 그 정부를 ‘공식’ 정부로 승인한 해이다. 1948년 건국절 주장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궤변인 이유다.

셋째, 건국이란 용어를 통해 이승만 추종자와 ‘친일적’ 뉴라이트는 어떤 이해를 공유하는가? 누구나 알듯이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이지, 친일 부역자가 아니다. 물론 그는 분단 책임, 친일파 중용, 독립운동가 탄압, 헌정 유린, 부정부패, 양민학살 등으로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일이다. 그런데도 이승만을 “대한민국 건국의 원훈이자 한민족의 독립과 번영의 기초를 다진 국부”로 추앙하는 자들이 친일적 뉴라이트의 ‘정체성’ 희석에 가담하고 있다. 그 엉뚱한 일의 배경에는 1948년 이후 정치적 기반의 취약, 반공 이념의 과잉, 그리고 독재의 늪에서 이승만 부역자들과 친일 부역자들이 야합한 역사가 있다. 최근의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1948년 건국절 주장은 그 후예들이 친일적 뉴라이트 중심으로 재편되는 추이를 반영한 듯하다. 뉴라이트 의심 인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그 상징적 ‘사건’으로 읽힌다.

요컨대 ‘건국 대통령’ ‘1948년 건국’ ‘독립운동이 건국 과정’ 등 주장은 사실적 논리적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친일적 뉴라이트(이승만 찬양자 포함)는 노골적으로 억지 주장을 편다. 그 목적이 “한국은 독립운동가들이 건설한 국가가 아니다…. 식민지 시기에 성장한 지식인을 중심으로 해서 건설하였다”라는 해괴한 역사 인식을 공식화하려는데 있다는 지적이 많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역사 왜곡을 통한 ‘족보 세탁’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 비틀기’나 다름없다.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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