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시내 수필가

몇 해 전부터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성묘를 다녀오는 것으로 의무를 끝낸다. 이즈음이면 ‘어디서 명절을 지내느냐’는 인사를 나눈다. 주고받는 말끝에서 기대감과 불편함이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 바야흐로 며느리 모드로 돌입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며느리와 시어머니, 친밀하지만 한없이 어려운 사이다. 그 관계는 늘 딜레마에 가깝다.

이런 불편함은 식물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을 확인하면 ‘며느리’라는 이름을 지닌 풀은 열두 가지가 있다. 이들은 대개 억압의 대상이던 며느리와 관련된 설화를 지니고 있다. 밥이 다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에 넣은 밥알 때문에 죽임을 당한 며느리를 담은 며느리밥풀꽃, 톡 튀어나온 것이 며느리의 배꼽처럼 생겼다는 며느리배꼽, 시어머니가 밭일 중 생리현상을 해결하려 풀을 한 움큼 쥐었다가 그 가시에 찔리자 화가 나서 ‘며느리 밑 닦을 때나 쓰라’고 했다는 며느리밑씻개까지.

반면, 백합과의 산자고(山慈姑)에는 산에 사는 자애로운 시어머니라는 뜻이 있다. 자신을 지극히 섬기던 며느리의 몸에 큰 종기가 생기자, 산속을 헤매며 찾아온 풀로 상처를 낫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얻은 이름이다. 야생화 이름에 며느리를 싫어하는 시어머니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 며느리밑씻개. 마디풀과의 한해살이로 덩굴성이다. 사각으로 모가 진 줄기를 따라 예리한 갈고리형 가시가 거꾸로 나 있다.
▲ 며느리밑씻개. 마디풀과의 한해살이로 덩굴성이다. 사각으로 모가 진 줄기를 따라 예리한 갈고리형 가시가 거꾸로 나 있다.

식물의 이름에 얽힌 전설은 고부 관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인다. 한때는 우스갯소리처럼 ‘시’ 자가 들어간 것은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고 말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떤 이는 전쟁이라고 했다. 다른 이는 갈등이라고도 했다. 감정의 골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질 때면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남편만 탓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해마다 명절 앞뒤로 이혼율이 갑자기 증가한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을까.

변화의 시대다. 주변을 보아도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부 관계 또한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진정한 관계는 역할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리라. 늦더위의 끝자락에서 두 인격체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공존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나무의사·

송시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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