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래잡이 도구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최종적으로 고래사냥을 마치고 몸체를 해부하는 도구로 무엇을 사용했을까 물어보았다. 이 교수는 고고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도구도 없이 멧돼지를 잡아먹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시인들이 어떻게 사냥을 하고 어떻게 고기를 섭취했는지 몸으로 체험하게 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적절한 자연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나무와 돌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돌을 깨뜨리면 작은 조각들이 나오는데 그 작은 조각으로 멧돼지의 가죽을 가르는 일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미호천 상류에서 나오는 홍옥석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붉은 홍옥석으로 만들어진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붉은 돌도끼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걸 당장 볼 수 없겠느냐고 했다.

나는 가까운 시일에 붉은 돌도끼를 가지고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낸 다음 책상 위에 놓인 붉은 돌도끼를 손에 들고 쓰다듬었다.

이 돌도끼가 오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김재성 노인의 기록대로라면 김용삼의 할아버지인 김일환이 일본인 순사 마츠오를 살해한 흉기로 사용된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따라 들어가 보면 암각화를 새기던 고대에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에 사용된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흉측한 무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붉은 돌도끼를 손에 들고 힘을 주어 움켜쥐면 왠지 모를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장난감 권총을 사서 손에 처음 쥐었던 기분 같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권총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돌도끼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김용삼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용삼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김용삼에게 할아버지 이름이 김일환이냐고 물었다. 김용삼은 깜짝 놀라며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찾아와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은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김용삼은 더 놀라는 목소리였다. 얼마 전에도 보훈처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묻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25년 전에 할아버지 이름을 물었던 일본노인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김용삼에게 가 보기로 했다. 붉은 돌도끼를 다치지 않게 타올에 곱게 쌌다. 서재를 나서기 전에 책상 위에 놓아 둔 머리모양의 홍옥석을 바라보았다. 도끼에 이마를 찍힌 듯한 문양과 눈 밑으로 흘러내리는 핏자국 같은 문양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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