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종씨들은 사연댐과 대곡댐에 수몰되면서 각지로 흩어졌다고 했다. 일 년에 한 번씩 대곡댐 근처에 만들어 놓은 망향정에서 모인다고 했다. 그때가 복숭아꽃 살구꽃이 만발하는 봄철이라고 했다. 기다렸다가 그때 참석하게 되면 수몰되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애환을 들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소설감이 엄청 많을 겁니다. 내년 봄에 한번 와 보세요.”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그들의 모임이 서석곡에서 이루어져야 아귀가 맞았다. 수몰민들의 이야기는 서석곡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 벼루가 들어있는 먹통을 나에게 팔겠느냐고 했다. 김용삼은 단호하게 팔 수 없다고 했다.

“이건 조상들이 물려 준 가보와도 같은 것인데 내가 팔아먹으면 안 되지요.”

그러면 왜 붉은 돌도끼를 일본노인에게 팔았느냐고 하니 지금 무척 후회한다고 했다. 그때는 좀 궁핍한 때여서 돈에 눈이 멀어 팔았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 이 돌도끼를 다시 매입하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얼마에 넘겨 줄 것인지 물었다. 그때 판 금액은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조상들이 물려준 물건이라고 해도 오백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주고 되찾아올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안 그래도 홍옥원석을 구하면 돌도끼로 가공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십만 원 정도면 가공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더 이상 김용삼에게서 알아낼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머잖아 할아버지와 관련해서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언질만 주고 나왔다. 막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려는데 유촌 마을의 김인후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인후는 대뜸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반곡 마을에 와 있다고 했더니 마침 잘되었다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작은 할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에 오늘 면회가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나는 곧장 유촌 마을로 차를 몰았다. 십 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돌려야 했다.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김인후는 곧장 나의 차에 올랐다. 그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얼른 가도록 합시다. 두동에 있는 울산요양원은 잘 알고 계시죠?”

“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요?”

“가면서 말씀 드릴게요.”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언양 경주간 국도를 타고 조금만 내려가면 예전에 있던 삼정 마을이었다. 그길로 들어서면 대곡댐을 가로지르는 제법 규모가 큰 삼정교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두동면소재지로 갈 수 있었다. 요양원은 면사무소에서 빤히 건너다보이는 연화산 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김인후는 차 안에서 새로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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