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 쓰신 별의 전쟁에서는 북한에 두고 온 처자식을 그리워하면서도 남한에서 결혼을 다시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지만 멀쩡한 처자식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따라 간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죠. 더구나 임자가 있는 남의 부인을.”

김인후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나는 나 자신을 향한 질타로 착각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끌고 가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웃으며 농담조로 말을 받았다.

“그런데 참 인간들이란 알 수 없는 종자들이죠. 도둑질이 나쁜 줄은 다 알면서도 없어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남의 돈을 훔치는 놈도 있고 남의 마누라를 훔치는 놈도 있고 심지어는 남의 글을 훔치는 놈도 있습니다.”

“헛! 글도 훔칩니까?”

“글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든 생각까지 훔치는 세상입니다.”

“허 참.”

김인후는 케케묵었다고 유교적인 가르침을 내팽개친 결과가 아니냐고 했다. 인간의 기본도리를 가르치는 면에서는 법에 모든 걸 맡기는 것 보다는 유교적인 도덕률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나는 그의 주장에 일부분 동조해 주었다. 그런데 왜 많은 남자들이 배우자가 아닌 여자에게 쉽게 빠져 들어가는 것인지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의 대답은 독특했다. 수컷 사마귀는 교미를 마치면 암컷에게 잡아먹히는데 그 사실을 사전에 알았을까 몰랐을까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후손을 남기기 위해 알고도 감행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의 대답은 아니었다. 인간 같으면 단지 후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인후는 자신은 생물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일시적으로 암컷이 숫컷의 지능을 마비시키는 호르몬이나 향수 같은 것을 내뿜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성분이 밝혀지지 않은 생화학 물질인지 아니면 독특한 인간만의 기나 염력 같은 것인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와의 대화를 잠시 중단한 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에리코란 여자에게 빠져 평생 남의 나라에 가서 살고 온 김재성 노인은 암컷에게 잡아먹힌 숫컷 사마귀와 동일한 범주에 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감추고 있을 뿐 가슴 속에 거센 사막의 회오리바람을 품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된 김동휘라는 여자의 존재가 회오리바람처럼 나를 휘감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김동휘는 20년 전에 잠시 보았던 핼쓱한 낯빛에 옴폭 파인 볼우물로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김은경 시인이 건네준 시 잡지에 실린 김동휘는 형체조차 없는 유령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에서 불어온 후끈한 바람이 치맛자락을 날리고 있을 뿐, 그녀는 세상의 시선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