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논설위원
이재명 논설위원

밤마다 이슬이 비처럼 내리는 계절이다. 하지만 일주일 후 상강(霜降, 23일)이 지나면 이 이슬도 서리로 바뀌리라. 요즘 농촌에는 감나무들이 푸른듯 붉은듯 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감나무 이파리 사이로 빨간 홍시(사진)들이 감췄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반중(盤中:소반 가운데) 조홍(早紅)감(일찍 빨갛게 익은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귤의 일종)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그로 설워하나이다. ‘조홍시가’(박인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박인로가 가까이 지내는 한음 이덕형으로부터 조홍감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홍시를 좋아하는 부모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음에랴. 박인로는 이 시를 지으면서 풍수지탄을 더욱 깊이 느꼈을 것이다. 이 시는 육적회귤(陸績懷橘)이라는 고사와 관련돼 있다. 삼국시대 오나라 왕 손권의 참모를 지낸 육적은 6살 때 어느 대갓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음식상에 놓인 귤을 품 속에 숨겼다가 들키고 말았다. 주인이 연유를 묻자 육적은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주인은 육적의 효심에 탄복해 귤을 한아름 싸주었다고 한다.

가황 나훈아의 노래 ‘홍시’는 이맘 때만 되면 돌아가신 모든 엄마를 불러낸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오면 눈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 세라~.

조선시대 때는 감나무의 5덕(文·武·忠·孝·節)을 칭송했는데 그 중 하나가 효(孝)였다. 치아 없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풍기 군수로 재직하면서 백운동 서원을 지었던 주세붕은 ‘아버지가 홍시를 즐겼으므로 자기는 종신토록 차마 홍시를 먹지 못했다’고 행장에 기록하고 있다.

조만간 서리가 내리면 가지는 더욱 앙상하게 드러나고 홍시의 색깔은 더 붉어질 것이다.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처럼 홍시도 저절로 붉어졌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힌 것일 게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 나쓰메 소세키는 이렇게 노래했다.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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