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시대 유대인 소녀 안네의 일기
5·18 민주화 운동, 3·15 의거 담은
고교생의 일기…소중한 기록 유산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죄송한 비유지만, ‘안네의 일기’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많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안네의 일기에는 1942년 6월14일부터 1944년 8월1일까지 유대인 소녀였던 안네의 짧지만 뜻깊은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그녀의 일기는 지난 2009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1992년 유네스코는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 MOW)’ 사업을 설립했습니다.

MOW 사업은 ‘기록유산의 보존에 대한 위협과 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세계 여러 나라의 기록유산의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습니다. 전쟁 등으로 전 세계의 중요한 기록물은 다양한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그 어려움이란 ‘약탈과 불법 거래, 파괴, 부적절한 보호시설, 재원 문제’ 등이었습니다. 그 이전 이미 많은 기록유산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안네의 일기는 세인의 애독서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 독일의 극악무도한 잔인한 만행이 횡행하던 시절,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 전 네덜란드 가상의 친구인 일기장 키티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남긴 일기입니다. 소녀의 기록이지만 전쟁의 비참함을 후대에 일깨워 준 문화유산, 세계적인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안네 프랭크는 나치스에 의해 독일의 어느 유대인 수용소에서 언니와 함께 장티푸스에 걸려 짧은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녀가 사망한 뒤 발견돼, 1947년 네덜란드어로 출판된 이후 각국어로 번역돼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영화, 연극 등으로 만들어져 가히 일기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안네 프랑크 생가는 세계적 관광명소가 돼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한국판 안네의 일기’가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 많지 않을 것입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된 한 여고생의 일기와 관련 기록 등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영구 보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기의 주인공은 당시 광주여자고등학교 3학년으로 전남도청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주소연씨입니다. 주씨는 당시 전남도청에서 목격하고 언론보도를 보며 느낀 생각들을 신문자료 스크랩과 함께 대학노트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지난 2011년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때 주씨의 일기장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가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가 왜곡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일기를 썼다.”라며 유네스코에 일기장을 기증했었습니다. 그녀의 일기에 이런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갖은 만행을 벌여 사망자는 밝혀진 사람만 해도 200명을 능가하고 실종자는 거의 한 동에 몇 사람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매스컴은 일절 이러한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완전한 정부 편에 서서 우리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있었다.’라고.

지난해에도 1960년 마산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첫 유혈 민주항쟁’이었던 3·15의거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 쓴 일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김주열 열사가 합격한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 2학년으로 학생회 부회장이었던 김종배씨가 쓴 일기였습니다. 그의 일기는 지난해 4·19의 역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될 때 함께 세계의 기록유산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안네 프랭크, 1980년 5월 광주의 주소연씨, 1960년 3월 마산의 김종배씨의 일기에서 저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조, 또 강조한 ‘둔필승총’(鈍筆勝聰)의 지혜를 배웁니다. 아무리 둔한 기록이지만 총명함을 이긴다는 이 말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또 기록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역사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하루를. 당신의 시대를. 당신의 경제를. 당신의 건강 상태를.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기록하는 자만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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