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주장·저질폭로가 일상인 여야
연금 개혁 등 미래지향적 정책은 방치
다당구조 전환 등 전면 제도변혁 필요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월드컵 16강의 환호도 잠시 뿐, 우리나라 정치를 지켜보며 답답해하는 국민들이 늘어가고 있다. 구체적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은 모두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며 미래의 어젠다를 제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극단적인 주장과 저질 폭로가 일상적인 정치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상식을 따라가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수인 극렬 지지층만을 겨냥한 팬덤정치가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 정치에는 여와 야의 구분이 없다.

우선 야당을 보자.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을 전혀 연고가 없는 곳에 출마시켜 국회의원을 만들고 또 다시 당 대표로 선출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게다가 인천의 지역구를 양보해 준 사람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낸 것은 정치 코미디의 결정판이었다. 우려한 대로 최근 야당 대표의 최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대통령 선거 이후 야당의 역할은 ‘대표 방탄’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여당은 또 어떤가. 천신만고 끝에 정권교체를 이룬 이후 권력투쟁에 빠져 지금까지도 당 내분으로 헤매고 있다. 정권 잡은 지가 언제인데 여전히 임시 지도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권 후 1년은 국정의 청사진을 만들고 일사불란하게 추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서로 권력을 잡겠다고 자중지란에 빠진 채 국정의 동력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

야당 대표를 범죄자로 간주하는 여당과 집권세력, 대통령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벗어나려는 야당, 이런 여야 정치구조에서 협력이나 대화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미래의 담론은 사라지고 사생결단의 투쟁만이 존재한다. 합리적인 토론과 상호양보에 의한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대표 방탄’과 ‘권력투쟁’에 매몰된 정치를 보면서 보통의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에 사로 잡혀 있다.

국회에서 쟁점이 되는 이슈들을 보자. 말로는 미래지향적이고 민생을 생각하는 정책을 논의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권력기관이나 언론과 관련된 것이다. 대부분이 자신들의 권력 쟁취나 유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이나 대학 구조조정, 연금개혁 등 미래지향적 정책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른바 ‘공부모임’들이 여럿 있지만 순수하게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진짜로 공부하는 모임은 한 군데도 없다. 물론 공부모임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도 없다. 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로서 그저 ‘패거리’일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라의 미래는 염두에 없고 오로지 권력과 공천 획득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본질이 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치가 우리나라 발전을 가로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 포용과 이해가 사라지고 증오와 대결만 남아 있다. 정치의 품격과 격조가 사라지고 막말과 조롱이 난무하고 있다. 거의 모든 이슈가 정치의 영역에만 들어오면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정치블랙홀에 빠지고 만다. 우리 정치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고장난 체제가 되고 말았다. 이제 전면적인 제도변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당별로 지역구도가 자리한 현 상황에서 양대 정당은 소선거구제를 통해 ‘권력 나눠먹기’를 즐기고 있다. 이런 구조를 과감하게 깨야 한다.

연합과 협치가 가능하려면 우선 양당구조를 다당구조로 바꿔야 한다. 중선거구제 도입하여 보다 다양한 세력이 권력을 분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 여론이 아직은 미지근하지만 내각제로의 개헌도 염두에 둘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논의의 출발은 국회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공고한 기득권 세력이 된 국회가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할지 모르겠다.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미래지향적 정치개혁의 담론을 이끄는 정치인의 등장을 기대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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