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이후 침체일로 울산 삼성SDI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에 발 맞춰
통큰 투자를 통한 재도약 기회 삼아야

▲ 신형욱 부국장 겸 사회부장

울산에 터전을 잡아 한국을 넘어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많다. 울산을 기반으로 질적·양적 성장을 해오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경제의 기적을 일궈내는 주역이 됐다. 산업화 초기만 해도 대다수 기업들은 울산에 본사와 생산공장, 더 나아가 연구소까지 두고 회사를 일궈갔다. 이후 급변하는 세계 경영환경 등으로 상당수 기업들이 울산 비중을 줄여 나갔지만 울산공장들은 지금도 그룹이나 기업의 지주역할을 하는 종가사업장으로 뿌리를 내려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울산 기업의 성장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가 삼성이다. 삼성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울산에서 삼성정밀·석유·BP화학 등 3대 석유화학사와 삼성SDI 등 그룹 내 4개 주력 사업장을 꾸려왔다. 울산 4사가 참여하는 삼성지역협의체까지 별도로 두고 지역 사회 다방면에서 기여해 왔다. 기업들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노동, 환경 문제 등에서도 삼성은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었다.

하지만 삼성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울산 화학3사가 빅딜로 2014~2015년 타 그룹에 매각됐다. 울산에선 케미칼사업 분야를 떼어낸 삼성SDI만 남았다. 삼성SDI도 침체일로여서 울산에서 삼성의 무게감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삼성SDI는 2004년부터 브라운관 사업의 급격한 침체로, 특히 CRT를 주력 사업군으로 해온 울산사업장이 큰 위기를 맞았다. 회사 설립연도를 제외하곤 35년째 이어오던 흑자행진도 당시 막을 내렸다. 한때 9500명에 달했던 울산사업장의 인력도 1500명대로 곤두박질쳤다.

삼성SDI는 초기 브라운관 이후 PDP, LCD, AMOLED 등의 디스플레이 시대를 거쳐 이차전지산업, 전기차용 중대형전지, ESS전지공장까지 숨가쁘게 주력산업 수종을 다각화해왔다. 급격한 수종변화는 울산사업장이 삼성그룹의 신사업 발굴과 육성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부침이 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울산사업장 직원들은 “먹을거리를 만들면 뭐하노, 돈 되는 것은 삼성전자가 다 가져가버리는데…”라는 말을 단골 술안주로 삼았다.

이차전지 등 친환경 에너지와 첨단소재를 주력 사업으로 방향을 정한 이후에도 삼성SDI는 종가사업장인 울산은 외면했다. 울산사업장은 부지면적만 227만㎡(약 69만평)에 달하지만 3분의 1 가량만 활용되고 있다. 일부 옛 브라운관공장 등은 헐린 채 부지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부지를 구하지 못해 사업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타 기업과는 정반대다. 하지만 삼성은 인력 수급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울산 투자에 소극적이다. 삼성그룹이 지난 3월 전국 사업장에 10년간 6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밝힌 바 있지만 울산엔 양극화물질 등 배터리 핵심소재에 대한 연구와 생산시설 투자 확대 등만 언급했을뿐이다. 구체화된 것은 없었다. 지역민들은 물론 울산사업장 구성원들조차도 울산이 여전히 찬밥이라며 불만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데 최근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울산이 국가첨단전략산업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되면서 삼성SDI의 울산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 울산시도 삼성SDI ‘첨단 이차전지 생산 시설’ 유치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시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육성·지원 사업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오는 2030년까지 삼성SDI의 매출이 14조원에서 59조원으로, 수출액은 13조원에서 52조원으로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으로서도 울산 투자에 더이상 망설일 명분이 없어 보인다. 울산사업장 내에 복지동의 철거가 진행되면서 울산 투자가 가시화되는게 아니냐는 기대감도 읽힌다. 더욱이 울산엔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공장 신축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삼성SDI 울산사업장에서 만든 전기차배터리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탑재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안정적 공급망 확보와 물류비 절감 등 상호간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울산은 일자리 확대와 고부가가치 창출 등으로 탈울산을 막는 충분한 호재가 된다. 그러기 위해선 삼성의 통 큰 울산 투자가 우선이다. 삼성이 다시 울산 기업지도의 한복판에 들어오기를 고대해 본다.

신형욱 부국장 겸 사회부장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