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길어진 축축한 올해 여름
과일·채소가격 폭등예상에 힘들지만
시·소설 읽는 등 예술통해 위로 얻길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장마가 더위 속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습니다. 장마에 연일 높아진 습도에 몸이 힘들고 불쾌 지수까지 덩달아 높아져 장마전선에 내몰린 우리를 힘들게 만듭니다. 예년에 장마는 평균적으로 남부지역이 24일에, 중부지역이 26일에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장마에 ‘막판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필리핀 해상에서 발생한 태풍 5호 ‘독수리’의 등장입니다. 시시각각 몸짓을 불리며 양 날개를 힘차게 펼치고 있는 이 독수리는 태풍의 눈이 선명해지면서 현재 대만과 중국을 향해 북상 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이 독수리는 더워진 여름 바다를 지나면서 최대풍속 초속 50m급의 ‘매우 강’급 태풍의 맹금으로 발달할 전망입니다. 태풍 ‘독수리’-이 이름을 우리나라가 제출했다고 합니다-는 목요일쯤 대만을 지나고, 주 후반에 중국 푸저우(福州) 인근에 상륙할 것 같다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해서 다행입니다만 올 장마에는 변수가 된다고 합니다.

예보에 따르면 현재 우리 기상청이 예상하는 변수는 두 가지입니다. 독수리가 중국 내륙으로 날아갈 경우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북상으로 장마전선이 북한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 항로가 예상을 벗어나 약간 서쪽으로 방향을 틀 때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비구름대가 한반도 내륙에 걸쳐서 또 다른 비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니 장마의 끝은 오는 28일쯤 윤곽이 드러날 전망입니다.

이래저래 장마의 고통은 7월이 끝나야 함께 끝이 날 것 같습니다만, 먼바다 태풍이 친구가 되자며 찾아오는 것이 아닌지 또 다른 걱정에 빠집니다. 그래서 여름이면 우리를 환호하게 하는 새파란 바다와 팽팽한 수평선 위로 마술처럼 솟아오르는 하얀 뭉게구름이 더욱더 그립기까지 합니다. 저 또한 지쳐 주술처럼 장마가 끝나면 바다로 달려가야겠다, 고 다짐하게 됩니다.

사실 8월 바다를 즐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은 것은 아닙니다. 8월 8일이 벌써 여름 속에서 가을이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는 입추(立秋)고, 삼복더위의 끝인 말복이 10일입니다. 여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푸른 바다는 길어야 한 보름 정도 남았다고 봅니다. 이래저래 여름이 축축해진 채로 지나가겠지만 우리가 견뎌야 할 삶의 생채기가 아물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갈 것 같습니다. 장마의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채소, 과일값의 폭등이 서민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 뻔해지고 있습니다. 여름 속에서 벌써부터 올겨울이 힘들지 모르겠다는 기우(杞憂)에 빠집니다.

이럴 때 치료 약은 ‘예술의 힘’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웬만한 화가와 시인 뺨을 치는 수준의 그림을 그리고 시를 척척 짓는 시대에 돌입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예술이 인간의 고통 극복에 위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마에 지친 발길을 잊고 있었던 예술의 현장을 찾아가 보길 권합니다. 읽다 만 시집이며 소설책을 다시 잡기도 권합니다. 그 일에 위안과 위로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 전남 진도에서 오는 28일부터 3박 4일간 열리는 ‘해변시인창작학교(교장 나태주 시인)’에 청소년과 일반인 250여 명이 찾아온다는 짧은 뉴스를 읽으며 저는 여름나기의 큰 희망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여름 행사가 모든 것이 불편할 것인데 그 불편을 감수하며 두 눈이 별빛인 듯 초롱초롱 빛나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 사유 깊은 답을 찾아갈 참가 청소년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예술의 힘이 진정한 힐링인 것을 배우는 일이 앞으로 점점 장마가 길어질 한반도 여름의 고통을 슬기롭게 이기는 큰 가르침일 테니까요.

바다의 정의 중에 ‘모든 것을 다 받아주기에 바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바다가 있어 장마의 태풍의 고통도 있지만, 바다가 있어 다시 시작하는 힘을 배웠습니다. 여름의 고난이 엄청난 수증기를 풀어 놓고 큰 바람을 만드는 바다에서 오지만, 그 바다에 푸른 희망이 숨어있습니다. 철 지난 바다가 될지 몰라도 그 바다에서 환하게 웃고 서 있는 당신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