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와 1318세대는 푸른색 이음동의어
푸른 바다같은 꿈을 향해 유영하는 존재
고래를 만나려면 기다림을 먼저 배워야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그때 고래가 힘차게 헤엄치며 찾아왔다. 문체부와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의 지원으로 지역 1318 청소년을 대상으로 갖는 ‘시창작교실’의 강의를 맡았을 때였다. 그들에게 시(詩)로 이끌 ‘메타포’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할 때, 울산의 ‘고래바다’에서 만났던 수천 마리의 돌고래 떼가 찾아왔다. 동해의 돌고래들과 1318세대는 푸른색의 ‘이음동의어’다.

그들은 푸른 바다 같은 꿈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유영하는 존재다. 시창작교실의 주 강사인 내게 주어진 시간은 16시간, 그중 12시간은 강의실에서, 4시간은 창작 현장을 찾아가도록 짜져있었다. 고래와 돌고래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친구들에게 고래를 상상하게 해주는 일이 먼저였다. 무엇이든 친숙하게 만들어 줘야 친구가 되는 법이다. 친구가 되어야 대화가 된다.

그 친구들에게 고래와 대화하게 하는 법은, 상상 속에서 온전하게 고래를 만나는 일이다. 마시는 물잔 속에서,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시를 쓰는 만년필의 잉크 속에서, 시집의 행간 속에서 고래가 찾아오게 했다. 상상으로 고래를 만나는 아이들의 눈빛은 빛났다. 묻고 답하는 사이, 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뛰어놀았다. 그들의 놀이가 시가 되었다. 살아있는 시가 쏟아졌다.

그즈음 제주발 슬픈 뉴스가 전국적으로 타전되었다.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죽은 새끼를 업고 다니는 돌고래에 대한 아픈 뉴스였다. 고래의 정체성은 ‘모성’이다. 사람보다 더한 자식에 대한 애정을 고래들은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친구였던 고래가 그 뉴스로 어머니가 되었다.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바다 환경에서 고래가 얼마나 위험한지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 상상에서 현실로 시선을 돌렸을 때 고래는 연민의 대상이 된다.

연민(憐愍).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그 연민이 우리나라 고래의 현주소다. 연민이 생겨나야 고래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아직 고래를 도전의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식도락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지구라는 별에 공생하는 어떤 동물이든 사람의 친구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그 생각이 1318시기에 정착되어야 무엇을 만나든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고래도 마찬가지였다.

고래를 통한 창작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상상 속의 고래는 환상적이었고, 현실 속의 고래는 리얼했다. 우리는 1994년, 30년 전에 제작된 고래 영화 ‘프리윌리(Free Willy)’를 보며 ‘같은 생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내 생각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생각으로 이동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장생포항에서 출항하는 ‘고래바다여행선’에 몸을 실었다. 고래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었다. 미리 고래를 탐사하는 방법, 고래가 나타날 때의 바다 징조, 고래를 만나지 못할 경우까지 이야기해주었다. 여름이 끝나지 않은 바다는 뜨거웠지만, 우리는 더 뜨거운 열정으로 고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고래는 만나지 못했다. 나는 아쉬워하는 그들을 한 편의 시로 위로했다.

‘동해에 고래 만나러 갔다가 보지 못했다고/실망하지 마라,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바다에 고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희망이 보이는 것이 아니잖아/꿈이 보이는 것이 아니잖아/젊은 벗들이여, 그대의 희망과 꿈이/꼬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라’(졸시 ‘바다가 푸른 이유처럼’ 첫 연)

고래를 만나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을 친구들은 이해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기다릴 줄 알아야 만나는 일이 그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위의 시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보아라 바다엔 고래가 살아있다/바다처럼 그대 희망은 있다, 꿈은 살아 기다리고 있다//그래서 바다든 청춘이든 푸르다/저리 눈부시게 푸른색이다.’

기상 관측 이래 지구가 가장 더운 여름날, 우리는 시를 만나고 고래를 만나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시를 읽고 쓰는 그런 일이다. ‘내 안의 꽃을 피우는 시창작교실’은 끝이 났지만, 그 자리에 시가 찾아오고 고래가 찾아올 것이라 나는 믿는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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