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귀한 가을날에 꽃향기 선물하는
금·은목서는 계절 깊을수록 향기로워
나이들수록 사람의 향기도 그윽했으면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시월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무도 스스로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고 낙엽이 되어 가지를 떠나갑니다. 나무들이 추위에 대비해서 제 안의 물을 비우는 이 계절에 이르러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는 자연의 섭리가 신기합니다. 꽃도 그렇게 향기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백명의 사람이 지나가면 백명 모두 걸음을 멈추고 꽃내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두리번거리게 합니다.

금목서, 은목서가 그 주인공입니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에 따르면 이들 나무는 한국(경상남도, 전라남도)과 중국에 분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를 넘어선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로 목서류 나무들의 북방한계선이 울산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의외로 추운 지역에서까지 금목서, 은목서 이야기를 합니다. 목서(木犀) 나무들이 가을의 향기를 품고 북상하는 중입니다.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꽃이 귀한 초겨울을 즐길 수 있다. 겨우내 푸른 잎과 자주색 열매, 섬세하고 풍성한 가지에 황홀한 향기까지 갖추어 정원수로는 금목서보다 더한 식물이 없다.’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 나무와 향기를 알고 그 날의 적바림에 ‘마당이 있는 집을 가진다면 금목서, 은목서를 심겠다.’라는 다짐을 적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당신도 금목서, 은목서 앞에서 저와 같은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나무의 꽃향기를 비유하자면 ‘첫사랑의 향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전의 일이어서 첫사랑의 색깔과 향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가슴이 뛰고 피가 뜨거워지던 그 시간을 금목서, 은목서가 고스란히 간직했다가 향기로 전해줍니다. 예고 없이 와락, 그렇게 찾아오는 꽃향기입니다.

저는 금목서 향기를 처음 만났던 그 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가을밤이었습니다. 날씨가 스산해져 어깨를 웅크리고 돌아가고 있는 저의 어깨를 톡톡 치는 향기가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라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었는데 그때 이미 저는 그 꽃향기에 감염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중독된 상태였습니다. 그 이후 저는 가을이면 금목서, 은목서 꽃향기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목서는 ‘중국이 원산지인 물푸레나무과의 꽃나무’입니다. 계수(桂樹), 계화(桂花)라고도 합니다. 중국의 명승지 계림(桂林)도 그 나무들이 많이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윤극영 선생의 동요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는 아닙니다. 중국은 계수(桂樹), 계화(桂花)로, 우리나라에서는 금목서, 은목서라 불리는 것입니다.

금목서, 은목서는 향기로운 꽃이 피지만 크기가 0.5~1cm 정도의 작은 꽃이 여러 송이 열립니다. 금목서에는 등황색 꽃이, 은목서에는 흰 꽃이 핍니다. 향기가 강해 만 리까지 퍼진다 해서 만리향(萬里香)이라고도 합니다. 봄에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서향나무에는 천리향이란 이름이 붙었고, 여름에 꽃이 피는 백리향도 있습니다. 향기가 천 리 만 리를 가겠습니까만, 그만큼 강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금은서, 은목서에게 만리향이란 이름을 준 것은 꽃이 귀한 가을과 초겨울에 귀한 꽃향기를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그 향기를 글 읽는 선비의 향기로 대접했습니다. 사람의 향기가 으뜸이라는 말입니다. 옛말에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했습니다. 사람에 인품(人品)이 있으니, 꽃에도 화품(花品)이 있어 이 계절의 금목서, 은목서는 가히 으뜸입니다. 이들 나무에도 교잡종, 즉 가짜가 있습니다. 순종 금, 은목서의 잎에는 가시가 없는데, 혹 당신이 보는 잎에 가시가 있다면 구골목서나 박달목서라는 유사품이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나이는 먹는다고 합니다. 세상 와서 살면서 나이를 먹으면 나잇값을 해야 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나는 향기로운 나무 앞에서 나잇값을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날이 추워질수록 향기로운 금목서, 은목서의 향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꽃 향에 사람의 향기를 더해 그윽해지고 싶은 시월의 끝입니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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