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 1.5℃ 이하로 유지 목표
2050탄소중립 ‘UAE콘센서스’ 채택
각국의 자발적 NDC 공약 이행 절실
향후 30년 노력여하에 인류미래 달려

▲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산업수도 울산이 생태도시로 거듭났다. 어릴 적 기억으로, 유치원 다닐 때쯤 울산시청 뒤편 우리 집 근처에 실개천이 흘렀다. 꼬맹이 친구들과, 때로는 삼촌들과 함께 개울물로 첨벙 뛰어들어 크고 작은 돌들과 수풀을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 붕어는 물론, 가끔씩은 이름 모를 예쁜 빛깔의 물고기들이 미끄덩하고 손에 잡혔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걸려들 때면, 어머니는 신정시장에서 따로 장을 보셔서 다른 미꾸라지들과 합쳐 저녁상을 차리셨다. 그 몇 년 후 개천은 복개가 되었고, 개구쟁이들의 놀이터는 사라졌다. 매년 6월1일 공업축제일이 오면, 불꽃놀이와 퍼레이드 행진은 장관이었고, 산업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배가되었다.

물론, 반대급부는 있었다. 화학물질 타는 매캐한 냄새가 멀리 떨어진 주택가까지 날아왔고, 공업단지를 지나칠 때면 시커멓게 피어오르는 매연 때문에 낮도 밤인가 어리둥절한 적도 있었다. 공단굴뚝 끝단마다, 검은 연기를 태워 없애려는 불꽃 봉오리들은 올림픽 성화의 봉송 릴레이를 연상시켰다. 중학교 1학년 때, 삼산지역에 농촌 봉사를 간 적이 있다. 벼 베기를 도와주는 행사였는데, 정작 이삭 없는 볏단들만 수확했던 황당한 체험도 했다.

올해 초 국제관계대사로 부임한 첫날, 울산광역시장 접견실의 입구 벽에 걸려있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이 눈에 띄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그 다음부터는 정독으로, 몇 차례 읽었다. 1962년 2월3일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육군대장의 치사인데, 울산을 대한민국 최초로, 그리고 최고의 산업단지로 조성해 발전시키고자 하는 염원과 격려를 담은 내용이다. 그중에,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전환시대의 주역인 알파베타 세대들이라면 기겁할 수도 있겠지만, 1·2·3차 산업의 성쇠과정을 쭉 지켜보았던 필자와 같은 기성세대들은 과히 수긍할만하다. 울산은 이렇게 태동해 부동의 산업수도가 되었고, 지금은 생태도시로 거듭났다. 태화강은 죽음의 오염수로 낙인찍혔다가 은어와 황어가 뛰어 노는 관광명소로 되돌아왔다. 울산은 앞으로도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모범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미세먼지를 포함, 대기 오염상태가 다른 대도시들과 비교해도 양호하다는 점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겠다. 다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울산공단의 하늘 위로, 시커먼 매연은 더 이상 솟구치지 않지만,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매초 토해지고 있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필연적인 대가이다.

지구 온난화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인류에게 22세기는 없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카르타, 몰디브, 베네치아의 수몰이 일상화되고, 알래스카의 여름 날씨에도 익숙하다. 최근 이태리에서 사과 크기만한 우박들이 마구 떨어져 농작물과 태양광패널을 망가뜨렸다고 한다. 30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인류가 지구환경보호 의식을 공유하고 대응방안을 찾으려고 본격적으로 노력한 것은 불과 50여 년 전이다.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를 통해, 인류와 환경의 조화로운 공생문제가 처음으로 국제적인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그 후 20년이 지나, 1992년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기후변화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졌고, 기후변화협약, 산림협약, 사막화방지협약 등 결과물이 채택되었다. 1995년 베를린부터 시작된 제1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1)는 최근 두바이에서 폐막된 ‘COP28’까지, 지난 28년간 쉬지 않고 매년 개최되고 있다. COP28에서는 198개 당사국들의 전원합의로 ‘UAE 콘센서스’를 채택했다. COP 역사상 최초로, 지구 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유지하자는 목표 달성을 위해 2025년 이전 배출정점 달성 필요성을 촉구하면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강화된 국제사회 행동을 요구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 울산시 안효대 경제부시장을 단장으로 COP28에 참석중인 울산시 대표단.
▲ 울산시 안효대 경제부시장을 단장으로 COP28에 참석중인 울산시 대표단.
▲ 울산시의 다목적 어업 지도선인 ‘울산해오름호’ 선상에서 바라본 국가공단 전경.
▲ 울산시의 다목적 어업 지도선인 ‘울산해오름호’ 선상에서 바라본 국가공단 전경.

또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충 및 에너지 효율 2배 개선, 저감장치 없는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 가속화, 에너지 시스템의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 등 COP 역사상 처음으로 접하는 내용들도 많다. 오랜 이견과 진통을 거쳐, 이제 선후진국 모두는 차별적이지만 공통적인 책임 분담만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자발적인 탄소배출 절감약속(NDC)이 업그레이드되고 있고, 이를 위한 각국의 입법화 노력도 가속화되고 있다. 다행스럽다. 그럼에도, 2050 탄소중립 여정이 순항중인 것은 아니다.유엔환경계획(UNEP)은 “자발적 감축량만으로 탄소중립 달성은 어렵고, 현재 서약된 대로 이행된다고 해도 2030년 예상 배출량의 7.5%밖에 감축하지 못하며, 2050 목표치를 달성한다 해도 기온 상승을 0.5℃만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위기를 “God always forgives. We men forgive sometimes. But nature never forgives”라고 진단했다. 자연은 우리를 용서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줄뿐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기후재원과 검증수단을 가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강력한 기후체제가 구축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때까지는 적어도, 각국의 자발적인 NDC 공약 이행이 절실하다. 향후 30년간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호모사피엔스의 미래가 달려있다.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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