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철호 한국지역문화연구원장·문학박사

중국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이 환공을 따라 고죽국을 정벌하러 갔다. 봄에 출발했는데 겨울에 돌아오게 되었다. 지리에 어두운 데다가 날이 저물고 눈보라를 만나 그만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병사들은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있었다. 이때 관중이 말하였다. “늙은 말의 지혜를 쓰면 됩니다.” 환공이 늙은 말을 풀어 그 뒤를 따라가게 하니 마침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는 여기(<한비자> ‘說林’ 상편)서 나온 말이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 끝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지혜롭기로 으뜸인 관중조차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조차 배우려 하지 않으니 잘못된 일이 아닌가.’ 노마지지(老馬之智), ‘늙은 말의 지혜’는 하찮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장점이나 지혜가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은 ‘경험으로 축적한 지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누구도 모든 지혜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니 지혜는 나누고, 모르는 건 물어야 한다. 묻는 건 수치가 아니다. 진짜 부끄러운 건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거다. ‘척’하면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은 많다.

‘뒷방 늙은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실권 없는 노인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실권은 주로 경제적 능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노인에게는 경제적 능력보다 더 큰 게 있다. 연륜이다. 연륜은 긴 시간 동안 쌓여온 경험의 소산이다. 경험이 쌓인 사람의 지혜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그러니 헛되이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물질을 중요시하는 사회 풍조에서 경험의 지혜를 무시하여 내버려두는 게 지금의 우리 사회다.

그리스 속담에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모셔 와서 물어보라고 한다. 노인에게는 젊은이에게는 없는 소중한 연륜이 있다. 축적된 지혜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고 경험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나이든 사람의 연륜을 뒷방 늙은이라 부르면서 내버려두지 말고 그들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현명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송철호 한국지역문화연구원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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