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희 대송고등학교 교사

야호, 시원한 가을바람이 분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님이 와준 듯 그저 반갑다. 폭염과 늘 함께 한 올 여름이 끝도 없이 길어질수록, 더욱 간절하게 청량한 바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가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딸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조심스레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 소리도 들어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있다. 바로,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의 빛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나는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 한두 마리 사본 경험이 전부인데, 요즘 아이들은 병아리 부화기에서 알을 부화시키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한다. 딸이 집에서 병아리를 부화시켜 키워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허락했다. 하지만 아직 깨어나지도 않은 병아리를 위해 미리 집을 준비하고, 병아리 모이를 살 계획을 세우며 행복해하는 딸아이를 보니, 가볍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알 속에서 작은 생명을 키우고 있을 병아리와, 그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병아리를 기다리는 딸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줄탁동시(啄同時)’라는 말이 떠올랐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아야 한다는 그 말처럼, 한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깨고 성장하기 위해서도 그 자신의 노력과 함께 부모, 선생님, 멘토와 같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작은 알 속의 존재는 자신이 어떤 과정에 있는지, 자신이 지금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어디까지 성장했고 언제까지 이 과정을 이어가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며 어둠을 헤매는 기분일 것이다. 이는 알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미지의 세계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언제쯤 알을 깨고 나올지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 또한 어둠과 같을 것이다. 안과 밖, 모두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멈춰버린다면 알은 그 상태로 부패하고 어떤 탄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성장과 교육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각자 자신의 한계 속에 갇힌 것 같은 어둠과, 그럼에도 성장을 이끌어야 하는 또 하나의 어둠이 곁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둠에 머무르지 않고 그 속에서 서로를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느 순간 딱딱한 알껍데기에 금이 가고 빛이 스며들어 성장과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그 과정이 더디더라도, 어둠을 넘어 빛을 만나는 순간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작은 움직임을 이어가야 한다.

김건희 대송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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