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밤의 카페’ 배경으로 유명
기원전 1세기 무렵 로마도시 형성
성벽·경기장·극장·목욕탕·포럼 등
당시 기반시설 2000년간 원형 유지
일부 시설 오늘날까지 활용하기도
유적 단순 보존에만 그치지 않고
현재 삶과 자연스러운 공존 인상적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서유럽에서 역사가 제법 깊다고 하는 도시를 방문하면 로마 시대의 유적 몇 개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비단 서유럽뿐이겠는가. 로마 문명의 그림자는 아나톨리아에서 중동,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과거 로마제국의 영토에 속했던 지역에서 생생하게 남아있다. 바꾸어 말하면 유서깊은 서유럽 도시의 대부분이 로마 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있으며, 로마 도시의 바탕 위에서 시대적 변화를 겪어온 것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여러 도시 중에서 로마 도시의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곳을 꼽으라면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을 첫 손가락에 꼽겠다. 라벤더의 진한 향기 속에 고흐의 색광이 산란하는 프로방스 지방이다. 지중해에서 서유럽 대륙으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아를에 운하와 요새를 건설한 사람들은 로마인들이었다. 기원전 1세기에 서유럽 정벌을 위한 전진 기지로 도시가 형성되고, 4~5세기에 이르러 번성기를 누리며 프로방스 지방의 중심도시로 자리 잡았다.

‘작은 로마’로 불릴 정도로 발전했던 로마제국 시대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가시적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성벽은 물론이거니와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경기장, 극장, 목욕탕, 공동묘지, 심지어 포럼에 이르기까지 로마 도시의 중요한 기반 시설들이 거의 원형의 모습을 유지한 채 2000년을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단지 보존을 위한 유적이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현대적 기능으로 멀쩡하게 활용된다는 점도 경이롭다.

골목을 헤치고 구도시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골목 끝에서 느닷없이 콜로세움과 같은 거대한 경기장이 나타난다. 1세기 경에 건립된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Amphitheater: arena)이다. 마치 우주선이 내려앉은 것처럼 2000년 전의 낯선 시간과 조우한다. 2개 층으로 구성된 아케이드 건물이 타원형의 몸체를 드러낸다. 콜로세움보다 낮고 면적도 다소 적지만, 보존상태는 훨씬 양호하다. 부착 기둥의 틀 안에서 구축된 아치들은 거대한 매스를 우아하게 연출한다.

아를의 경기장은 장축 136m, 단축 109m의 타원형 경기장이다. 2만 명의 관중을 수용하며 전차경주, 검투 경기 등이 열렸다. 도시의 메인 스타디움이라 할 것이다. 관람석 밑에 갤러리로 구성된 통로, 관람석과 외벽 구조의 역학적 연결, 단시간에 탈출할 수 있는 출입구 배치 등 거대한 석조조적식 구조를 다루는 탁월성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콜로세움보다 10여년 후에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콜로세움의 건설 기술들이 그대로 적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 아를의 로마시대 아레나
▲ 아를의 로마시대 아레나

2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외곽 갤러리는 통로 공간을 밝고 경쾌하게 만들었다. 1층 관람석 하부의 내부 갤러리는 수많은 방으로 구성된다. 갤러리를 통해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전개되는 경기장의 장쾌한 스케일과 전경. 흥분한 관중들의 함성이 쏟아지는 듯하다. 지금 경기장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한 모습을 갖추었다. 중세시기에 요새로 변형되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2000년 전의 생생한 모습으로 재현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원형 경기장 옆에는 극장(Roman Theater)이 남아있다. 이 역시 로마 도시의 핵심적인 기반 시설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첫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 통치기에 건립된 것이라 하니 도시기반시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지어진 듯하다. 8000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극장이었다. 무대 부분은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반원형 객석과 오케스트라 부분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특히 객석의 아랫부분이 보존된 사례로서 희귀하다. 오늘날까지도 이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극장에서 골목을 따라 아래로 향하면 작은 광장들과 만난다. 로마 시대 도시 생활의 중심을 이루었던 포럼(Forum) 자리다. 물론 바실리카나 신전과 같은 로마 시대 건물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광장은 중세시대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그 건물의 모퉁이에는 로마 시대 건물 파사드의 한 부분이 남아있어 시대를 연결 짓는다.

더욱 경악스러운 일은 시청 지하에 남아있는 지하 포럼(The Crytoptoportico; underground Forum)이라고 부르는 유적이다. 이는 포럼의 중심부 지하에 건설한 회랑형 건조물이다. 지상 포럼의 바닥을 떠받치고 있었던 구조물이기도 하다. 평면은 ㄷ자형으로 회랑 중간에 기둥(Pier)을 세워 2열의 회랑공간을 만들었고, 50개의 피어로 지탱하는 볼트형 천정으로 터널 형태의 공간을 형성했다. 창고나 병영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볼트 상부에 창호를 두었지만 음습한 모습이 마치 공동묘지나 감옥과 같다. 포럼 지하에 이같이 거대한 아케이드가 설치된 사례는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었다. 탁월한 토목 기술을 구사했던 로마인들은 다층형 구조를 만들거나 지하공간을 만드는데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콜로세움과 같은 대규모 경기장은 지하에서부터 다양한 공간을 구성하고 경사진 관람석 하부에도 중층의 공간을 구축했다. 크로아티아의 스플릿에 남아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도 지하에서부터 다층으로 구축된 단지 규모의 궁전이다. 이스탄불의 예레바탄 사라이는 지하에 구축된 거대한 수조였다.

중심부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에는 로마 시대의 목욕탕도 유적으로 남아있다. 폼페이의 목욕탕 유적만큼 완벽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건축물과 비교하면 시대적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다. 원통형 건물과 돔 천정, 반원통형 구조 속에 반복되는 아치형 개구부,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교차로 사용한 아블라크 벽돌쌓기, 적갈색 치장벽돌과 테두리를 강조한 아치 등 비잔틴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포럼 광장에 자리한 카페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갖는다. 고흐가 사랑했던 ‘밤의 카페’가 해바라기만큼이나 진노랑의 캐노피를 드리운다. 2000년 전의 포럼에서 1000년 전의 성당과 20세기의 카페가 어떻게 공존하며, 천연덕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유적들을 골동품처럼 그저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현재적 삶에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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