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시작되는 첫날을 기다리며 낙동강 위에 놓인 창녕 남지철교 위에 섰습니다. 여름의 끝에 비가 많았기에 낙동강은 제 몸 가득 황토빛 물을 안고 일천 일백 리 물길 힘차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지구를 돌리는 힘과 같은 물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큰물이 흘러가는 것을 물 밖에서 보는 것과 물 위에서 보는 것이 다릅니다. 서편제 판소리 한 자락처럼 유장하게 흘러가는 물길인 줄 알았는데 남지철교에서 빤히 내려다보는 낙동강 물길은 거대한 함성과 같습니다.
 오랫동안 강을 모성과 같은 여성적인 이미지로 이해했는데 남지철교 위에서 강이 남성적인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압니다. 외유내강()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멀리서 보는 강은 굽어지고 휘어지는 부드러움이 있지만 그 속에는 무쇠를 뚫을 것 같은 강한 힘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지철교는 경남 창녕군 남지읍 본동에서 함안군 칠서면 계내를 잇는 총연장 390m의 다리입니다. 1931년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이 다리는 70년이 넘는 세월을 낙동강과 함께 했습니다. 6.25 때는 비행기 폭격으로 끊어지는 아픔을 겼기도 한 역사적인 다리입니다. 그 역사는 1950년 9월8일 이 다리가 비행기 폭격으로 끊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철교 상부에 상처와 같은 총탄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뚫린 구멍 사이로 바라보는 풍경 저 편에 민족의 아픔이 펼쳐집니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6.25까지, 이 강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민족사의 아픔을 남지철교는 낱낱이 다 보았을 것입니다. 해서 저는 남지철교를 근대사의 교과서라 은유하고 싶습니다. 당신도 이 철교를 걸어보신다면 제 은유에 쉽게 동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리는 소통의 상징입니다. 다리가 없는 강의 이 편과 저 편의 거리는 차안과 피안의 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다리는 강의 이 편과 저 편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의 말(언어)과 노래도 이어줍니다. 남지철교는 창녕 남지와 함안 칠서를 잇는 다리일 뿐만 아니라 강의 이 편 저 편의 문화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좋은 다리를 많이 가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 아치교인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있고, 포은 정몽주 선생의 피가 남아있다는 개성의 선죽교가 있습니다. 전남 함평에는 고려시대 때의 돌다리인 고막교(독다리)가 있고 서울 장충단공원 입구에는 조선시대 다리를 대표하는 수표교가 있습니다. 돌로 만들어졌기에 아직도 다리의 구실을 다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시내에는 기원전에 만들어진 석교들이 아직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다리의 역사는 14세기에 삼각격자상으로 짠 트러스(truss)가 고안되면서부터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8세기 중엽부터는 목조 트러스 시대로 접어들었고 그 이후 철의 출현으로 철제 트러스교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남지철교는 트러스교입니다. 다리의 본체는 부재가 휘지 않게 접합점을 핀으로 연결한 골조구조를 가진 트러스로 만들어진 소중한 다리입니다. 그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물결이 치는 모습입니다.
 오랜만에 찾은 남지철교 위에서 오래지 않아 이 아름다운 다리가 철거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다리가 낡고 노후 되어 새 다리를 만들고 그 다리가 개통되는 2007년에는 남지철교를 허물어버린다고 합니다.
 저는 행정이 툭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옛것을 허물어 버리는 일에 분노합니다. 부산의 영도다리도 그렇고 남지철교도 그러합니다. 쉽게 허물어버리겠다는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근대문화유산인 남지철교는 분명 문화재급 가치를 가진 다리입니다.
 제 역할을 다한 소중한 것은 그 이후부터는 문화재로 대접하는 법입니다. 서울의 남대문 그렇고 동대문이 그렇지 않습니까. 남지철교는 오랫동안 보존되어야 하는 역사의 다리며 그 지역 사람들의 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 낙동강을 건넜던 사람들의 추억이 남아있는 한 남지철교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다리는 만남의 광장입니다. 견우와 직녀를 위해 칠석이면 까마귀들이 오작교까지 만들어 주는데, 있는 다리를 끊어버리려는 그 생각부터 끊어버려야 합니다. 남지철교는 남아있어야 합니다. 먼 훗날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 날에도 이 다리 위에서 오늘처럼 당신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여행수첩---------------------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여행은 빨리 가서 천천히 돌아오는 것이 좋다. 창녕 남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찾아가면 빠르고 돌아올 땐 창녕으로 나가 밀양방면의 국도를 이용해서 돌아오면 느긋해서 좋다. 창원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지 나들목을 빠져나가면 이내 남지철교가 눈에 들어온다. 돌아오는 길에 창녕에 들리면 우포늪이 반긴다. 밀양연극촌도 울산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있다. 남지가 고향인 사람들이 운영하는 남지닷컴(www.namji.com)을 클릭하면 남지철교에 대한 사랑과 남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1-1
함안 칠서 용화산에서 바라다보는 남지철교. 철교 건너편이 남지읍니다
사진1-2
한국전쟁 때 폭파된 남지철교
*사진1-1를 크게 사용해주시고 1-2는 용량이 작은 자료사진이니 그 옆에 예쁘게 편집 부탁합니다

사진2
트러스교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남지철교

사진3(여행수첩 안)
남지철교에 남은 총탄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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