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그 잘 나간다는 초의란 중인가? 내가(이조판서) 추사 애비야."

"아이구, 어르신네 이 누추한 곳까지…"

달마산 미황사를 돌아 두륜산 대둔사(대흥사) 일지암을 오르자 30대의 젊은 중을 닦달하는 왠 노장의 고함소리가 우렁찼다.

그 다음 말은 짐작이 갈 것이다.

"오늘 자넬 손 좀 보러 왔다" "야, 임마! 왜 한양에서 얌전하게 지내는 내 자식 놈(완당)하고 허구한 날 풍류질이냐, 풍류질이?"

"너야 부모와 처자식도 필요 없고 벼슬도 필요 없으나 추사는 그렇지 않잖아" "오늘부로 내 자식과는 절교해! 그렇잖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 너 내 성질 무서운 줄 알지?"

이렇게 겁주며 족치다가 목이 말라 암자 뒤에 흐르는 샘물 한 바가지 마시고는 '아-, 이런 소락제호 같은 물을 먹고 살 정도면 눈이 바로 박힌 놈이다'고 여겨지자 "그래 자네가 초읜가?" 하시고는 두 말 없이 일지암을 내려갔다던 추사 부친 김노경의 고함치다만 이야기가 하나 있고.

제주도로 유배 가는 주제에 자신의 처지를 잊곤 초의 더러 삿대질을 해가며 "어느 촌놈이 저 대웅보전 현판을 썼노?(사실은 당대의 명필 이광사의 글이었다) 당장 떼라! 니(초의)는 그래도 글을 알면서도 저런 엉터리 글을 붙여 놓을 수 있단 말인가? 당장 떼지 않으면 이 침계루(枕溪樓)에서 일어나지 않을끼다"

할 수 없이 초의가 그 현판을 떼자 흐르는 시냇물을 베고 누웠던 추사가 벌떡 일어나며, 중놈 주제에 귀가 밝아 좋다고 하던 추사가 제주에서 근 20년을 유배를 풀고 오는 날 초의가 살짝 다시 걸어두었던 대웅보전을 보고는, 저것이 어느 명필의 글이냐고 감탄하며(추사가 마음이 늘었을까? 글이 늘었을까?) 즉석에서 살이 쪄 윤기가 조르르 흐르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써서 그 옆에다 걸었던 이야기가 둘이다.

초의가 "굴뚝새는 저 깊은 숲 속에서 집을 짓고 살지만 자기 한 몸 쉬는 데는 나무 가지 하나면 족하다"며 일지암(一枝菴)을 지었는데 이곳은 천하를 얻고자 하면 천하를 얻고, 부처를 얻고자 하면 부처 목을 따낼 수 있는 명당 중 명당 만고 불파(不破) 지지였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가 만대에 사부(師父)가 되라고 중부(中孚)란 이름으로 주역(풍택중부)에서 따와 지었는데 그 할아버지의 성명철학 노트가 이렇다.

"넌 조실부모 하고 남의 손에 자라나는 천재일 것이다. 스물이 넘으면 훌륭한 선생을 만나 너의 꿈이 거의 보름달에 가까워진다. 그 때는 묵은 악습과 게으름이 너를 찾아와 갖은 유혹을 할 것이다.(예수와 석가의 유혹처럼) 삼십엔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나 이 악 물고 죽을 심정으로 공부만 하여라. 반드시 그 고개를 넘어가지 않으면 이 생에선 하늘 항복이 없다. 곧 억겁을 따라온 너의 못난 악습을 쳐 죽이지 않으면 넌 일보도 전진을 할 수 없다. 오십이 넘으면 큰 벼슬(圓覺)을 성취하여 만대 자식에게 까지 그 영광을 상속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세상으로부터 추앙받는 벼슬을 얻게 되리라. 이 중부란 이름에 엄청난 철학이 담겨있으니 반드시 이 영광을 얻도록 하여라"

시(詩) 서(書) 화(畵) 다도(茶) 범패(樂) 주역(易)을 복수 전공한 팔방미인 초의는 어쩌다 자신도 생각지 못한 다도가 오늘에 다부(茶父)로 추앙시켰다.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자아-. 오늘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가슴에 달을 하나씩 건져 갈 수 있게 일지암 유천의 물로 초의차를 한 잔씩 다리자!" 문수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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