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용장계곡 금오산 자락엔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용장사 삼층석탑이 있다. 이를 두고 고청 윤경렬은 "신라인의 안목은 대단타. 저 땅 바닥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바치는 돌산을 탑의 기단으로 본 석공의 눈이 세상 가장 높은 탑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어느 나라 돌탑이 저리 높다던가?"하던 설명도 놀랍지 아니한가.

이 탑으로부터 동쪽으로 이어보면 석굴암이요 다시 동으로 보면 감은사지 이견대에 문무대왕이 24시간 비상 잠수경계를 하는 수중왕릉에 이른다. 이곳 삼층석탑(여자) 밑에 목 없는 삼층원형탑(남자)이 남산에서는 가장 특이한 자리 배치인데, 이를 주역으로 풀어보면 참 재미가 있다. 주역에서는 남녀가 상열을 나눌 때 하늘이 시키는 대로 절대 복종하진 않는다(미쳤다고).

아무리 하늘이 채찍을 들고 남자더러 여자 배 위로 올라가라 해도 무식할 정도로 고집을 피우며 밑에 벌렁 드러누워선 평소에 여자의 엄청난 노고를 치하라도 할듯이 이 순간 만은 여자를 높이 모시고 숭배를 한다.

이런 섹스 체위를 주역은 지천태통이라 하며 이를 천하에 가장 점잖은 공자님이 왈 "태통 체위를 하면 남녀 공히 힘은 가장 적게 들어서 좋고 반대로 희열은 최고로 누릴 수 있어 좋다. 하늘과 땅도 야합을 할 때는 땅이 위로 오르기에 만 가지 종자를 다 생산할 수 있었고 우주천지의 뜻도 하나로 모을 수 있었지 않았던가. 고로 옳은 인간은 이를 보고 내실을 기하고 소인배들은 허상을 중히 여기었다. 이런 여성 상위의 체위에서 가정과 천하가 화평하여 군자의 도는 영원할 것이고 잡배들의 도는 잠시도 발붙일 틈이 없는 이유가 여기 지천태통 여성 상위에 있다"고 설파한다.

용장계곡은 경주 남산에서 그나마 물이 제일 많다. 다 이런 지천태통의 아름다운 이치가 교차하다 보니 계곡물은 흥건하고 그 위로는 충담이 삼화령 세존들과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안민가를 부르고 또 바로 앞엔 고위산이 점잖게 천년을 버티고 있는 것도 다 일리 있는 그림이다. 진리와 이치는 지남철처럼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도 약한 여성을 치켜 세워주는 그 놈이 잘 살지 않던가. 난 몸이 찌부등하다든가 기가 좀 빠진다 싶으면 반드시 용장계곡으로 지천태통의 기를 얻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가끔 쳐 올라간다.(작년부턴 이 계곡에 설잠교가 세워졌다)

이곳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설잠(雪岑)이란 법호를 달고 입산한 후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곳이란 건 다 안다. 이 어른 마지막 모습을 부여를 거쳐 보령 쪽으로 빠지다 무량사 입구 무진암 뜰에서(초라한 부도탑) 만나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설잠 김시습이 용장계곡에서 부른 유명한 차 노래다.

'동창에 달빛 질 때까지 잠 못 들다가/ 차병을 들고 차디찬 샘물 길어가네/ 속진을 싫어하는 성품도 이상하지만/ 창문에 봉(鳳 단종복위)자 쓰는 일로 청춘은 다 갔다/ 낙엽을 긁어 차 끓이는 사연 그대는 아는가? / 자다황엽군지비(煮茶黃葉君知否)'

생육이냐, 사육이냐의 기로에 서서 사나이가 죽지 못해 살아남은 부끄러운 선비의 울분이 서려있다. 세상 돌아가는 꼴 보기 싫다고 머리 깎고 중 된지도 오래건만 그래도 12·12 쿠데타처럼 공수부대 탱크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혹 정신 차리려나 싶어 오늘도 차 솥에 불 당겨본다. 수염 기른 중이 되어 기관총을 들고 산사를 뛰쳐나갈 수도 없고, 노량진 포구에서 아직도 뜨거운 피비린내 풍기는 여섯(사육신) 개의 잘린 머리를 수습하여 새벽을 빠져 나올 때의 기분 같으면 "개자새끼들­확­마아…"하고 두판재기로 임금이고 나발이고 갈겨쓰면 속 시원하였겠지만, 죄 없는 차사발만 박살내고 말았던 심정을…. 문수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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