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은 1890년부터 프라하 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치던 중 1892년 51세 때 미국에 초빙돼 뉴욕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에 뒤이어 대서양을 건넌 두 번째 유럽의 대작곡가가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그 전년인 1891년에 창설된 뉴욕 카네기홀의 첫 공연을 위해 초빙돼 미국 각지의 도시를 돌았는데 그 기간이 매우 짧았다. 그러나 드보르작의 경우 약 2년 반이라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친 방문으로서 음악원 원장이라는 중책을 담당하고 있었던 만큼 미국 음악계에 미쳤던 영향은 매우 컸다.

드보르작이 미국에 머물고 있던 기간 동안 미국의 멜로디를 사용해 일반적으로 널리 친숙해져 있는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했다. 여기서 '신세계'는 미국을 말하며, 당시 미국은 콜롬부스의 미국대륙 발견룒1492년룓부터 꼭 400년, 그리고 1786년의 미국 건국으로부터는 겨우 100여년이라는 짧은 역사의 나라로 유럽인들은 '신대륙', '신세계'라고 불렀다.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 부터'는 활기 넘친 당시 미국생활에서 받은 인상과 그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들은 소박한 미국 민요, 흑인 영가에서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구상된 것이다. 그는 뉴욕 국립음악원 원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작곡, 다음 해 여름휴가 때 아이오와 주의 스필빌이라는 곳을 찾아가 완성했다. 드보르작은 뉴욕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견딜 수 없는 향수에 빠졌다. 비록 미국의 일부이긴 했지만 보헤미아 이주민이 가장 많았던 스필빌에서 시끄러운 도시를 피해 요양을 하면서 창작에 더욱 몰두, 이 곡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스필빌에서 완성된 이 작품은 1893년 12월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해 크게 성공했다. '신세계'는 물론 미국을 뜻하는 말이기는 한데 이같은 이름은 당시 청중들의 애국심에 크게 어필했으며, 멜로디 또한 친숙해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드보르작의 '신세계'는 미국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해서 작곡한 것 만은 아니었다. 그는 보헤미아 친구들로부터 낯선 미국 땅에서 느끼는 향수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편지를 음악으로 썼다. 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은 드보르작의 고향 보헤미아의 정신이며, 잘 살펴보면 미국의 것과 보헤미아의 것이 혼합되어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곡은 형식상 전부 4개의 악장이며, 보통의 교향곡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다. 전곡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제2악장의 라르고룒Largo룓로 잉글리시 혼으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애수를 띤 선율은 고국을 멀리 떠난 드보르작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표현돼 있으며 듣는 사람의 마음에 깊이 침투하는 명 선율이다. 이 선율은 후에 드보르작의 제자인 '피셔'에 의해 '그리운 고향룒Going Home룓'이라는 합창곡이 되었다.

드보르작의 고향인 '보헤미아'는 현재의 체코 서부지방을 가리킨다. 이 지방 사람들은 악기 한 두 가지쯤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재질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슬라브인의 한 종족인 보헤미안들은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옛날부터 고유의 민속음악이 전해져 왔으며, 오스트리아에 300년 동안이나 지배당하면서도 이들은 민족적 개성을 굳건히 유지했다.

보헤미안의 작품들은 본질적으로 낙천적이며, 억압당한 민족의 슬픔이나 한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우울보다는 즐거움, 행복, 춤이나 축제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들도 보헤미아 음악을 들을 때면 지나간 시절의 좋았던 추억이나 야릇한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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