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문화재 풍수답사기'라는 풍수 관련 책을 펴낸 풍수전문가 장영훈씨의 홈페이지(www.mw.or.kr)에는 사찰풍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의 유명한 건축학자가 부산 범어사의 일주문을 보고 경악했다. 가장 불완전한 구도라고 알려진 역삼각형 구도로 지어진 범어사 일주문이 380년동안 한번도 바람에 넘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심을 거듭하던 이 건축학자는 물리적 계산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일주문의 비밀에 대해 "한국의 신바람이 들어간 건축물이기에 신명나서 서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장영훈씨의 대답은 명쾌하다. 그동안 일주문을 넘어뜨릴 만한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 일견 선문답 같은 엉뚱함이 느껴지지만 그의 대답에는 사찰풍수의 기본이 들어있다.

과거 풍수가 입지 여부의 제일 조건이었을 때 사찰은 대부분 장풍(藏風)과 득수(得水)의 원리를 따랐다. 장풍이란 바람을 가둔다는 의미로 기가 고요하고 평탄한 명당의 입지 요건이다.

태풍조차 안정된 바람으로 머물게 하는 명당에 위치해 있으니 오랜 세월 일주문이 넘어질리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입지 덕택에 일주문 주위 나무들 중 바람맞아 굽어진 나무 또한 없다고 한다.

신화적으로 볼 때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동구 동부동 동축사(東竺寺) 역시 울산과 경주의 동쪽 울타리 동대산맥이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일으킨 마골산의 정기를 받는 풍수적 명당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유사 권3 '황룡사 장육조'편을 보면 동축사는 지금과는 달리 경주 황룡사에 버금가는 대찰로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최초 위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위치는 여전히 모호하다.

진흥왕이 황룡사 건립을 마쳤을 때 바다 남쪽 하곡현 사포(현 울산)에 큰 배 한척이 나타났다. 배 안에는 서축(인도) 아육왕이 황철 5만7천근과 황금 3만푼이 있었다. 이것은 아육왕이 석가불을 주조하려다 이루지 못하고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낸 것. 그 사실을 안 진흥왕은 사포 동쪽의 높고 깨끗한 땅을 골라 동축사를 세우고 세 불상을 주조해 편안하게 모셨다고 전해진다.

동축사 대웅전의 뒷산은 기가 강한 마사질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산 정상에는 기운이 응집된 거북이 모양 같기도 하고 소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한 큰 바위가 있다.

흔히 '관일대(觀日臺)'라고 불리는 이 바위에는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동쪽 바닷속 부상국(扶桑國)의 신성한 나무를 일컫는 '부상효채(扶桑曉彩)'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풍수전문가 강상구씨는 "바위의 모양을 풍수적 오성체로 분류하면 부와 무관의 관직을 의미하는 금성체(金星體)와 문장, 학자를 의미하는 문필봉으로 목성체(木星體)에 해당된다. 이러한 풍수적 이기를 지닌 관일대는 대웅전의 배산으로 청룡에 해당돼 부와 관직의 기운을 순행시킨다"고 말했다.

또 풍수지리의 형국론적 시각에서 동축사는 와혈(窩血)에 해당되는 봉황의 집으로 봉소형(鳳巢形) 명당에 해당된다.

와혈은 닭이나 새둥지 또는 소쿠리 속처럼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의 혈을 말하며, 모양이 마치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듯하다고 해서 개구혈(開口穴)로도 불린다. 주로 바람을 피하기에 용이한 높은 산에 많다고 한다.

봉소는 봉황의 둥지라는 의미이다. 봉황은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섯가지 빛과 소리를 낸다는 신화 속의 상서로운 새이다.

그 상서로움 만큼이나 봉황과 관련된 혈의 발복은 매우 크다. 풍수지리서에 따르면 성인, 현인, 귀인을 비롯해 제왕과 왕후장상이 배출되며, 학문과 문장이 출중해 인품이 훌륭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

강상구씨는 "옛부터 동축사에서 불공을 많이 들인 집안에서 효자와 충신이 많이 배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남목출신으로 언양김씨와 달성서씨 집안에서 인재가 많았다"며 "풍수적으로 봉황의 알 숫자 만큼 신도 중에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봉소형국은 안산에 알 모양의 사격(혈 주변의 산과 바위)이 있어야 하고, 주변에는 오동나무와 대나무, 구름과 같은 사격이 있어야 발복한다. 봉황은 오동나무 열매와 죽순을 먹는 새로 신화 속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축사 주변에 오동나무를 많이 심으면 부처님의 영험함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고 강상구씨는 말했다. 또 그는 동축사는 서축국과 인연이 있으므로 그 기운의 영향을 받기 위해서는 출입 통로를 서쪽으로 배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울산 인근에서 주변 자연환경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찰로는 동축사와 비슷한 풍수형국에 자리하고 있는 문수산의 문수사가 있다. 도움말=강상구 풍수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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