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셔터 아일랜드

필자가 의과대학 학생으로 임상실습을 정신과로 갔을 때가 생각 난다. 약물에 취해있는 듯한 몽롱한 표정, 느린 말과 행동,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가끔씩 터져나오는 환자들의 돌발적인 발작…. 이런 익숙치 않은 분위기와 환자들 때문에 그들 주위에서만 겉도는 당시 필자의 모습을 보고 정신과 교수님은 이렇게 조언해 주셨다. “이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단지 자신이 인정하는 세계가 다른 것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세계를 이해해 주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이러한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쓰여진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 원작 <살인자들의 섬>을 영화화 한 것이다. 워낙 탄탄한 스토리의 소설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은 원작에서 등장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조차도 거의 토씨도 틀리지 않게 영상으로 옮겼다. 또한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 Caprio)는 이젠 꽃 미남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중년의 연방 수사관, ‘테디 다니엘스’의 역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

영화는 테디 다니엘스가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셔터 아일랜드’라는 섬의 ‘애쉬클리프트 병원’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여자 환자가 사라진 것을 수사하기 위해 갔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그곳에 수감되어 있는 ‘앤드루 레이디스’라는 환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였지만,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병원-차라리 탈옥이 불가능한 감옥-에서 일어나는 연방 보안관 테디와 모두 입을 맞춘듯한 그곳 의사, 간호사, 직원들간의 시종 지속되는 팽팽한 심리 게임, 음산한 정신병동과 폭풍우,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테디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열연으로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폭풍우로 인해 완전히 외부와 고립된 섬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중범죄자들이 수용돼 있는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 무엇인가 숨기는 듯한 병원 관계자들, 그곳에서 혼자가 되어 왠지 살아서는 섬을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밤마다 주인공 테디를 괴롭히는 과거 전쟁 장면들의 환영…. 무겁지만 이런 팽팽한 긴장관계로 관객들은 테디의 정신세계에 합류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나올 때까지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신들이 한 동안 테디의 정신세계에서 객관적인 정신세계로 이미 이동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고는 2시간 넘어 자기가 몰입했던 테디의 세계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영화에서 사용한 반전의 장치다.

반전이 일어나는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전혀 반전을 예상하지 못하고 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반전을 즐기기 보다는 테디가 고통스러워서 탈출하고 싶어한 절망의 깊이를 알기 위해서라도 줄거리를 알지 못하고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화에서 계속 묘사되는 테디의 과거 트라우마에 의한 환상은 어쩌면 테디를 둘러싸고 있는 두 세상을 연결해 주는 복선일지도 모른다.

영화 말미에서 시한 박사, 또는 척에게 한 “무시무시한 괴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선량한 사람으로 살 것인가?(“Live as a big monster or Die as a good man?”)라는 테디의 중얼거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세계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망설임이었을 것이다. 영화 내내 주인공을 포함한 여러 등장 인물들에 의해 반복되었던 “이 섬에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You’ll/She’ll/They’ll never leave this island”)이라는 말이 여기에 대한 답을 미리 말해 준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주인공 테디처럼 우리들도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각자의 섬, ‘셔터 아일랜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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