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통기타 가수 박정호

수재집안 반대 딛고 음악 시작
라이브 카페 대타로 나서 홈런
음악 DNA 지닌 천생 음악쟁이
공연 하며 ‘이웃돕기’도 앞장
▲ 음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평생의 업으로 삼은 통기타 가수 박정호씨. 김경우기자
“음악은 상품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음악’이라고 적힌 ‘포장’만 뜯으면 온통 잡다한 것들로만 가득 차 있어요.”

통기타 가수 박정호(39·울주군 언양읍 반천리)씨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음악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는 요즘 음악은 인공적으로 치장해 심금을 울리기는 커녕 현란한 반주 소리만 기억에 남기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박씨가 기타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 당시에는 음악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2남2녀 중 막내로 형과 누나가 하버드·MIT·서울대를 졸업할 정도로 수재였지만 그도 이에 못지 않았다.

박씨는 “20년 전만 해도 집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며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셀 수도 없이 무수히 많은 기타가 박살 나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음악은 그의 운명이었다. 1989년 대학입시를 마치고서 한 라이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가수가 출연을 못하자 대타로 나선 것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기타를 놓지 않았고, 군에 입대해서도 문선대에 배치돼 음악을 계속 했다.

박씨는 “전역 후에도 음악을 하기 위해 세 번이나 대학을 바꿨다”며 “가족의 눈을 피하려고 처음엔 건축과와 토목과에 들어갔지만 음악에 몰두할 수 없어 치기공과를 갔더니, 결국 집에서는 졸업만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 음악은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6개월 가량 기타를 쳐다보지도 않고 멀리 하면서 아무 이유 없이 몸 곳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릴없이 누워있다가 기타 케이스를 보고 심심풀이로 기타를 치면서 일 주일도 안돼 아픈 게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는 잊고 지냈지만 음악은 고맙게도 떠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가수 송창식의 부산 공연에 인사하러 갔

다가 ‘왜 음악을 안하고 그러고 있냐’는 질책에 확신을 가지고 음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그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지난해에 결혼한 부인이다. 지난해 1월 가수 권용욱과 함께 공연을 하면서 이 공연을 보러온 아내에게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했다.

박씨는 “음악만으론 가정을 꾸리지 못하기 때문에 영어 통·번역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며 “안정된 수입을 가져다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음악을 관두고도 싶지만 아내의 만류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울산지역 통기타 가수들의 모임인 ‘다락방’을 만들어 공연을 함께 준비하고, 소년소녀 가장돕기 등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음악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는 것을 몸소 표현하고 있다.

“‘음악은 한줄기 빛을 가리키는 손짓’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상자’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노력하고 나가는 음악인들의 노래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전상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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