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지폐 초상 주인공을 찾아서 -안동 하회마을 ‘퇴계 이황’의 흔적

스스로 학문 완성한 청량산 ‘吾山’이라 이름 붙여
후학 양성하던 도산서원엔 ‘선비의 나무’ 매화 가득
퇴계종택서 만난 16대 종손에 효도 관련 덕담 듣기도

이번 달에는 유적지 중심이 아닌, 역사인물을 찾아 떠나본다.
성리학은 중국 명나라에서 전해졌지만 조선에서 집대성되어 널리 유행했다.
조선시대 성리학 ‘붐’을 주도하며 나라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은 퇴계 이황 선생을 탐구해 보기로 한다.
그의 흔적은 안동 하회마을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달 초 한마음 교과서 탐방 학생들과 다녀온 안동 하회마을 탐방기를 정리해 본다.

◆ 여행의 시작

교과서 탐방을 준비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이 있다. ‘좀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는 것

▲ 퇴계선생이 거주하던 퇴계종택. 지금은 16대 종손이 살고 있다.
이다. 초등학교는 1~6학년이 함께 참여할 때가 많은데, 이 시기 6년은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이해력 차이가 참으로 크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지폐를 들고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1000원권 지폐에 대한 친숙함은 흥미유발로 이어져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지폐 속 퇴계 이황의 인상은 어떤가요?’ ‘지폐에 왜 매화가 그려져 있을까요?’ ‘구 1000원권에는 투호가 그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등으로 사전공부를 하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 도산서원

제일 먼저 퇴계 이황 선생이 후학 양성을 위해 애썼던 도산서원을 들렀다. 도산서원은 원래 도산서당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시자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에서 지정하는 사액서원으로 한 단계 격상시킨

▲ 한마음 교과서 탐방 학생들이 퇴계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도산서원을 찾았다.
것이다.

지난 3월 말 방문했던 그 곳에는 아직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고 있었다. 사실 서원 곳곳의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는 날이면 마치 신선국에 온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퇴계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매화나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매화나무는 추운 겨울에 눈 속에서도 피어올라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나무로 유명하다. 이는 힘든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올라 희망을 알리는 선비의 나무이다.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선생 등 퇴계의 제자들은 이 곳으로 보쌈을 매고 찾아와 수학했다. 몇몇 제자들은 혼자 오지 않고 형·동생을 데라고 찾아와서 함께 공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퇴계종택

아이들과 함께 청량산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청량산도 퇴계 선생님과 연관이 있다. 퇴계 선생이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여 본인 스스로 학문을 완성한 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산, 즉 ‘오산(吾山)’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퇴계종택에는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다. 솟을대문 앞에서 퇴계종택에 대해 알려준 뒤 내부는 둘러보는 순으

▲ 퇴계의 16대 종손인 이근필씨가 학생들에게 종택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 진행됐다. 그런데 집안으로 들어서니 백발에 흰 옷을 입으신 할아버지가 나오시더니, 무슨 연유로 왔는지 물으셨다. 귀가 어두워서 칠판에 글을 쓴 뒤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눠야 했다.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서 울산 초등학생들이 현장 체험학습을 왔다’고 전하니, 묵묵히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종택 내부 사랑채로 우리를 데리고 가셨다. 알고보니 그 분은 퇴계 이황 선생의 16대손 이근필 할아버지였다. 젊은 시절 국민학교 교사였다며 자신을 소개한 이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보니 옛 생각이 나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사랑채까지 부르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이 할아버지는 퇴계 종택의 유래와 효(孝)에 관한 말씀도 들려주었다.

“여러분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부모님께 잘 하는 것 만이 효도가 아닙니다. 말 잘 듣고, 맛있는 것, 좋은 옷 사드리는 것은 효도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자기를 잘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 되어야 부모님에게 큰 효도가 되는 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한테 존경받고 남에게 도움주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면 부모는 흐뭇해 할 것입니다. 걱정을 안시켜드리는 것도 효도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찌보면 효도입니다. 여러분께 좋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일러줄게요”

이 할아버지는 말은 마친 뒤 학생들에게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봉투 속에는 할아버지가 직접 쓴 ‘예인조복’(譽人造福)이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가 들어있었다. 뜻을 풀이하면, ‘남을 칭찬하는 것이 곧 복을 만든다’라는 말이다. 할아버지는 “여러분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고, 남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효도하는 사람이 되는 길은 이 네 글자 안에 모두 들어있다”고 강조하셨다. 이어 “여행을 해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뺏아서 미안하다”면서 아이들에게 일일이 사탕을 나눠 주시기도 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사랑과 넉넉한 인품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퇴계 종택을 나온 뒤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소중한 얘기를 들어서 좋았고,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 주어져서 고맙다”고 입을 모았다.

◆ 여행의 끝

안동은 해마다 수 차례씩 탐방을 다녀오는 곳이다. 이번 탐방은 개인적으로 10번째 방문이었는데,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소중한 추억을 담아올 수 있어 참 기뻤다. 나와 동행한 학생들도 모두 소중한 추억거리를 간직하게 됐다고 밝혀 인솔교사로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 이석민 현대예술관 문화기획과 교과서탐방 운영자

답사를 진행한 뒤에는 보통 후기를 롤링 페이퍼에 남기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그중 초등학교 5학년생 어린이는 ‘지폐 속 돌아가신 초상으로만 느껴졌던 퇴계 이황 선생님이셨는데, 안동에서 살아 숨쉬는 지폐 속 인물을 만난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다’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1000원권 지폐를 바라보니 살며시 내게 미소짓는 퇴계 선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석민 현대예술관 문화기획과 교과서탐방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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