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드러머 최윤석

군시절 포사고로 상처입고 전역
30대 넘어 선배들 하던 밴드 시작
생계 위해 대하 배달 등 외도
작은 라이브 공간 마련 소망

“지금 하는 음악을 앞으로도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작은 희망입니다.”


드러머 최윤석(44·중구 다운동)씨는 음악생활을 늦게 시작했다. 남들은 20대에 언더그라운드 밴드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는 30대가 넘어서 시작했다. 지금은 완치됐지만 군시절 포(砲) 사고로 인해 얼굴 반면이 일그러지는 상처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스토리는 ‘인생극장’을 방불케 한다. 군 말년에 터진 포사고로 전역을 한 최씨는 취업이 되지 않아 할 일이 없자 선배들이 하던 밴드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음악과 최씨의 인연은 시작됐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던 최씨는 음악을 배우는 것도 선배들보다 상당히 빨랐다. 팀에서 드러머가 없으면 드럼을, 기타리스트가 없으면 기타를 맡아 여러 포지션에서 기량을 뽑냈다.

하지만 서열은 엄연히 존재하는 법. 고집이 강한 그는 너무 개성이 강한 밴드 구성원 사이에서 생활하기가 힘들어 밴드를 그만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씨는 “그래도 추억이라고 생각하면 YGWG라는 밴드에서 생활할 때가 가장 즐거웠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며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봤고, 지금도 당시 맴버 중에는 아직도 서울에서 음악하는 친구도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당시의 현실은 그에겐 시련의 연속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는 돈벌이가 안되는 밴드대신 큰돈

▲ 음악을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작은 희망인 드러머 최윤석씨. 김경우기자 [email protected]
을 번다는 주위의 꼬드김에 멀리 전북 익산으로 향했다. 드럼을 치고, 기타을 치던 손은 새벽에 일어나 양어장에서 대하를 실어나르며 생계를 유지해 가며 이것이 인생이라며 자위해 갔다.

하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며 빈털터리로 다시 부산의 한 클럽으로 돌아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기타를 잡았지만 손이 굳어 얼마 못가 다시 그만 두게 됐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당시 울산에 얻어서 살던 집 마저도 경매로 넘어가게 돼 버렸다. 열심히 일을 해 겨우 위기를 넘겼지만 또 일이 터졌다. 누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보다 더 믿고 따르던 누나가 교통사고로 3년 넘게 고생하다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면서 정말 미치도록 힘들었다”며 “물도 마시지 않고 밤새 엄청나게 크게 기타를 연주했더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누나가 위안을 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가 음악에서 힘을 얻은 만큼 지금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울산의 아이들이 언제라도 자유롭게 함께 연주하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작은 라이브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말했다.

전상헌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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