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블라인드 사이드

스포츠만큼 감동을 주는 것도 흔치 않을 것이다. 운동 경기의 극적인 순간들은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게 만든다. 또한 감동을 준 스포츠 스타들은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된다. 이런 스포츠의 극적인 요소와 영화는 너무나 궁합이 잘 맞는다. 그래서 수 많은 스포츠 영화가 만들어졌고 그것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그리고 제작자들은 사람들의 감동만큼의 많은 수익을 가져갔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Blind side)>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풋볼을 소재로 하고 있다. 미국의 소외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난한 흑인 주인공이 풋볼 선수로서 성공해 나가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또한 스포츠 영화가 감동을 주는 일반적인 공식들, 예를 들면 정신적, 육체적 극한에 도전하는 주인공의 도전의식, 오합지졸의 선수들을 카리스마가 있는 감독이 부임하면서 이들을 일류 선수로 키우는 감동 등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스포츠 영화라기 보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내용을 담은 공익 계몽 영화 쪽에 더 가깝다.

현실 같은 소설이 있고 소설 같은 현실이 있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흥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소설 같은 현실 보다는 현실 같은 소설이 영화 소제로서는 더 좋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영화화하기 적당하지 않다. 실화이지만 너무나 따뜻하고 지나치게 착해서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는 처음부터 ‘우연히’로 시작된다. 오갈 데 없는 흑인 주인공이 우연히 농구하는 모습을 보고 백인 운동부 코치에 의하여 백인들만 다니는 사립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우연히 초겨울 날씨에 옷이 없어 여름 옷을 입은 채 비를 맞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주인공을 백인 부유한 아주머니가 발견하게 되었다. 우연히 그 집안은 스포츠 집안이었고, 우연히 그 집안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풋볼을 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하였다. 더욱이 주인공은 우연히 풋볼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었다.

이쯤 되면 영화를 보는 도중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 작위적이다라는 생각에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또한 엄마 또는 아줌마라는 캐릭터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산드라 블록이 주인공을 거두는 양어머니로 출연하는 사실, 미국의 국기인 풋볼, 미국식 기독교적 정서, 미국 상류층의 사회 공헌의식, 흑백 인종간의 생활 수준의 차이 등 우리가 100%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영화를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로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미국식 휴먼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잔잔하게 감동적으로 그렸다는 사실, 그리고 튀는 캐릭터 없이, 눈물을 짜내기 위한 유치한 장치나 지루함 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의 탁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저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보이는 실제 주인공의 행복한 모습과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그의 가족들의 환한 미소는 전율을 일으킬 정도의 감동을 준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말하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번 더 말하지만 영화의 모든 것은 실화였다.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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