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소중한 나를 찾기 위한 식물과의 여행

탈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 ‘씨밀레’서 인문강좌
상처받고 위축된 자존감 회복 위해 원예치료 선택
플라워케이크 만들기 등 통해 밝은 웃음 되찾아
▲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씨밀레 원생들의 작품 사진.
학교 교과과정 중에 비교적 자유로운 주제로 강의를 진행할 수 있는 ‘과제세미나’라는 과목이 있다. 나는 이 강의를 최근 시사를 주제별로 논하거나 자기 자신이나 주변사람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혹은 기회를 봐서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아동 성폭력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 남학생이 “우리는 잠재적인 성폭력 가해자예요”라는 말을 했다. 언제나 그렇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듣고 나니 이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폭력·성추행 등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고 또 그에 대한 대처 또한 강력해지고 있다. 성매매에 관해서는 수 년 전부터 이를 적극적으로 금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 언론 기사들에서 보듯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으며,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곳으로 숨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몇 년 전 법무부(2006년)가 밝힌 성구매사범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을 보면, 기혼자(46.5%)와 미혼자(47.5%)의 차이가 없으며,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고 학력수준이 높은 30~40대가 많았다. 직업이나 범죄유무도 별 영향요소가 되지 못한다. 또한 성구매자들은 남성의 생물학적 욕구와 남성성 표현의 하나로 성구매를 인식하며 당사자들 간의 엄연한 거래라고 정당화하는 경향이 많다. 이는 성매매가 특정 부류들만 행하는 것이 아니며 남성중심의 왜곡된 사회문화, 유흥문화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들은 각설하고, 지난해 울산지역시민인문강좌의 한 부분으로 ‘씨밀레’에서의 기억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씨밀레는 울산지역의 유일한 탈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다. 시민인문강좌는 각 지역에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경쟁을 거쳐 연구재단으로부터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그래서 사전에 여러 기관들과 대상을 물색하고 협의를 거치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사실상 씨밀레는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씨밀레를 내가 담당하게 되자 매우 당혹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여성이지만, ‘그들’에 대한 사전 이해가 글을 통한 이해로만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가 필요했고, 또 매우 조심스러웠다. 마침 원예치료를 전공하고 있는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원예치료란 식물을 매개로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의 재활을 돕는 것을 말한다.

이미 상담원이 ‘씨밀레 가족들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필요할 것’이라며 건넨, 성매매피해여성 수기를 엮은 책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삼인)’를 읽어보고 내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갔지만, 씨밀레 가족들과의 첫 만남은 예상보다 순탄치 못했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오히려 더욱 더 순수해 보이는 씨밀레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힘겨웠던 삶의 무게와 마음의 상처들로 인해 위축되고 예민해 보였다.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이었느니 서로 소통이 잘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간혹 그들 간의 경계가 더 커 보이기까지 했다. 첫날은 보통 예의상으로라도 그냥 대부분 점잖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일상적일 것인데, 선영(가명)이는 자신은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으니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며 강의를 끝내라고 종용했다. 첫날 강의를 마친 후부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과연 이들과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제대로 다가갈 수 있을까,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그들은 소통을 원할까, 그들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그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등 여러 가지 고민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또한 시민인문강좌를 처음 맡아본 우리 팀으로서는 다른 지역의 시민인문강좌 성공사례들을 통해 ‘소통의 결과물’들을 책으로 엮어내고 있던 터라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도 적잖이 작용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답은 한 가지로 집중되었다. 씨밀레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와 자존감과 자신감의 회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원예치료 프로그램의 주제도 ‘소중한 나를 찾기 위한 식물과의 여행’으로 정했고, 나를 위한 플라워케이크 만들기, 내 마음을 담은 접시정원 만들기, 감사와 용서의 꽃바구니 만들기 등의 세부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씨밀레 가족들의 마음도 조금씩 열렸고, 이날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보낸다는 얘기까지 나오기 시작했

▲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다. 처음에 우리를 마음에서 거부하고 있었던 선영이도 화상을 치료하느라 앉아 있기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웃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씨밀레 가족들과 함께 하는 동안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로 걱정도 되고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다. 선영이는 지난해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4년제 대학을 가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는데, 쉼터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고 쉼터에서 나오면 스스로 생활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를 도울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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