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로빈후드

러셀 크로우의 영화 <로빈후드>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주연을 맡았던 또다른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로는 매우 잔인한 전투신 뿐 아니라 러셀 크로우의 묵직한 음성과 반항적인 눈빛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나리오와 화면 모두 훌륭한 영화여서 몇 번을 더 보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영화를 같이 만들었던 리틀리 스콧 감독과 주연 배우였던 러셀 크로우가 다시 만나 액션 활극, <로빈후드>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기대감을 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10여 년이 지나고 나니 당시 잔인하고 스케일이 커 보였던 <글레디에이터>의 전투신은 최근 안방에서 방영하는 미드들에 비하면 소박해 보일 정도였다. 또한 이미 여러 감독에 의하여 만들어져 그 내용 자체가 식상해진 <로빈후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다시 이야기하려면 또 다른 시나리오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극복해야 할 것들을 가지고 시작한 영화 <로빈후드>는 12세기, 사자왕 리처드가 프랑스의 필립왕과 10여 년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명분을 갖고 시작한 전쟁이지만 그것은 힘없는 백성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임을 영화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런 피폐하고 억압받는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나타나기 나름이다. 악당과 영웅. 리처드왕 전사 후 즉위한 악당 존왕의 출현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로빈후드를 창조했어야 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영웅 탄생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을까? 영화 초반부 공감이 가도록 전쟁으로 인해 궁핍해지고 착취 당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자세히 그렸던 감독은, 전쟁터의 일개 궁수에 지나지 않았던 ‘로빈 롱스트라이드’가 영웅 ‘로빈후드’가 되는 과정에서는 갑자기 그 속도를 낸다.

리처드왕이 전사하자 탈영을 하고 도망가던 로빈 롱스트라이드와 그의 동료들은 전사한 왕의 투구를 들고 런던으로 가다가 습격을 받은 노팅험의 영주 아들의 유언을 듣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빈은 그의 아버지인 노팅험의 노쇠한 영주를 만나면서 탈영병이 영웅으로 변하게 된다.

노팅험의 영주 앞에서 눈 한번 감고 나니 심한 충격과 함께 과거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깨달으면서 갑자기 민중을 구해야겠다는 사명감을 얻는 모습, 반란을 일으킨 북부 귀족들의 군대 앞에 존왕이 아무런 호위도 없이 나타나는 모습, 그리고 때 맞추어 갑자기 노팅험의 지도자가 된 로빈이 나타나서 웅장한 웅변으로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모습 등 도무지 로빈 롱스트라이드의 ‘로빈후드 만들기’ 또는 ‘영웅 만들기’ 이외에는 아무 설득력도, 필연성도 보이지 않아 실소만 나올 뿐이었다. 또한 악역을 맡은 존왕 역시 <글레디에이터>의 악역이었던 코모두스가 보여 주었던 이중적인 고뇌 등은 전혀 없는 단세포적인 캐릭터로 영웅과 대비되는 악당의 역할로 한참은 모자란 모습이었다.

스토리를 포기하고 영상에만 집중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해변 전투신은 <라이온 일병 구하기>

▲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의 전투 장면을 찍은 세트가 생각났고 해변에서 말을 타고 적들을 괴멸 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엘 시드>의 장면들이 겹쳐져 보였다. 게다가 활 보다는 망치나 칼을 휘두르고 있는, 글레디에이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비대해진 러셀 크로우의 모습은 지금 보고 있는 영화가 무엇인지 자꾸 혼동하게 만든다.

압권은 “이것이 전설의 시작이다”라는 마지막 자막이었다. 옳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영화의 수준에 반한 엄청난 흥행을 본다면 말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실망감에 대한 유일한 위로일 것이다.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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