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강> 웃음으로 표출된 삶의 열망

▲ 김선주 울산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인생 살아온 수강생들

강의공동체 안에서 자신들 감정 솔직하게 표현

강사와 수강생 관계 넘어 허심탄회한 대화 주고받아

지난 4월의 목요일은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잦았다. 목요일만 되면 흐리거나 비가 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동구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가장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는 4월의 목요일 저녁에 진행됐다. 날씨에 따라 수강생들의 기복이 컸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5주였다. 5회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강생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도 걱정이었다.

걱정과 달리 인문학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은 필자가 최근 만나본 사람 중에서 제일 밝게, 크게 웃는 분들이었다. 수강생들은 강의 내내 열심히, 크게 웃었다. 다른 강의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부분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강의가 진행되면서 그분들의 웃음소리가 잘 살아야겠다는 열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난 잘 살 거야’라는 말 대신 ‘깔깔깔!’ ‘호호호’라는 웃음으로 삶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던 것이다.

이분들이 이러한 삶을 살게 되기까지는 꽤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한다. 아직도 수업료를 내는 분들도 있고, 이미 수업료를 다 지불한 분들도 있었다. 과거든 현재든 이분들은 아직도 삶의 무게가 만만찮았다. 상당수의 수강생들이 가족의 해체, 자녀의 투병, 경제적 곤란 등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분들의 삶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지 방향이 서지 않았다. 수업을 이끌어야 하는 강사의 입장에서 수업시간에 오갔던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는데 그분들의 삶을 잘 알지 못하는 터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위로를 한다고 한 것이 그분들께 상처를 준 일도 있었다.

이혼한 지 채 일 년이 안 된 여성 가장은 첫 수업시간에 계속 우셨다. 우는 사람을 옆에 두고 수업을 계속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위로를 한다는 것이 “그거 별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하게 됐다. ‘이혼 그거?’ ‘아이 아픈 거 그거?’ ‘돈 없는 거 그거?’ ‘별 거 아니에요’ ‘세상살이는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서 달라져요’ 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저도 저 마음 못잡아 갈팡질팡하면서 말이다.) 그때 “(젊은 사람이) 세상 다 산 것처럼 이야기하네”라는 말이 들려왔다. 나이와 무관하게 강사의 입장에서 위로를 한 것인데 이 분들에게는 불편함을 준 모양이었다. 위로가 더 큰 상처가 된 것이었다.

또한 준비해 간 수업의 내용을 충실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도 컸다. 특히 첫 시간에 진행된 ‘드라마 속 신데렐라 이야기’가 제일 어려웠다. 처음의 어색함 때문이었는지 강의가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수업 시간 내내 한가하게 드라마나 볼 시간이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강의를 끝내고 돌아온 내게 전화가 왔다. 전화의 요점은 강의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어렵다니! 가슴이 요동쳤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강의 내용은 세 차례나 바뀌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곧 그 분들께 정말 필요한 것은 수업계획에 맞는 내용이 아니라 위로받고 위로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문학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안에서 그 분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고 가감없이 표현했다. 그분들은 아무 데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곳에서는 할 수 있다고들 했다. 아무도 이해 못하는 심정을 수강생들끼리는 공감할 수 있다고도 했다. 수업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은 강사가 아닌 수강생들이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쪽으로 수업의 방향을 바꿨다. 강사의 역할은 인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강사와 수강생의 관계나 같은 강좌를 듣는 동료의 관계가 아닌 여자와 여자, 인간과 인간의 관점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독립영화 ‘똥파리’를 보면서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 나의 과거이거나 현재라는 한탄과 비통함이 오갔고, 드라마가 신데렐라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를 다루면서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잣대의 엄격함에 대해서도 재확인했다. 그리고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방송통신대 일일호프에서 오갔던 인생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 강사가 책에 있는 내용만을 되풀이하는 아둔함을 보일 때에도 따뜻하게 바라봐 주신 수강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지상인문학강좌>가 상반기 강의를 마치고 8월말까지 방학에 들어갑니다. 하반기 강의가 이어지는 오는 9월 독자 여러분들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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