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포화 속으로

남아공 월드컵으로 온 세상이 흥분의 도가니다. 연일 벌어지는 명승부에 모든 국민이 환호와 탄식을 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세월이 망각의 골짜기로 사라져 버려서인지 한국동란 발발 60주년이 되는 올해 유월, 전쟁의 아픔은 빛 바랜 사진 만큼이나 아득하다.

영화 ‘포화 속으로’는 이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는 1950년 한국동란 때, 포항여중에서 북한군과 11시간여를 대치하면서 국군과 연합군에게 시간을 벌어준 71명의 학도병의 실화를 각색하여 영화화 한 것이다. 필자가 ‘포화 속으로’ 영화를 보기로 한 것은 한국동란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가 2010년 6월 현재의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라는 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생각들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사실의 왜곡 없이 감동을 줄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는 71명의 학도병들이 교전 전,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나오면서 시작한다. 영화가 어떻게 끝마칠 지 이미 답을 다 이야기해 주고 시작하는 감독의 자신감은 어디서 온걸까 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분명히 민족 상잔의 6·25를 통해서 감독이 말하고 싶어하는 색다른 메시지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들게 했다.

하지만 결론은 돈이 아깝다 였다. 입장료가 아닌 113억이 들었다는 제작비가 말이다. 영화의 내용은 반공에 대한 선전 영화도 아니고, 반전 영화는 더더욱 아니었다. 포탄에 손과 다리가 잘려 나가고, 지프 차가 주인공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잔인할 정도로 실감나는 영화 장면들 속에서 유난히 멋을 부린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눈에 거슬린다. 예를 들면, 776 돌격 부대장인 박무량(차승원)이 부대원들을 뒤로 하고 담배를 피면서 2차대전 독일 장교처럼 사이드카를 타고 다니는 모습, 앙드레 김의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북한 장교의 하얀 군복, 육군 대위로 나오는 김승우(강석대)가 유유히 걸어 나오는 뒤편으로 다리가 폭파되는 장면 등 수많은 장면들이 전쟁의 고통을 반감시키는 겉 멋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너무 화려한 주연 배우들을 섭외한다고 모든 것 쏟아 부어서인지 너무나 빈곤한 스토리에 당황스럽다. 그저 화려하고 잔인한 전투 장면을 CG를 이용하여 화려하게 만들고 실화의 내용을 여기 저기 각색한 것 밖에는 없다.

괴물 같이 생각한 인민군이 어머니를 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혼란에 빠지는 학도병 오장범(T.O.P)에서는 반전사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을까? 일개 육군대위인 강석대(김승우)가 학도병들을 살려야 된다고

포탄이 날아오는 막사에서 사단장에게 악을 쓰는 모습에서는 휴머니즘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동생과 친구들의 죽음을 본 학도병들이 탱크를 폭파하고 총을 맞고도 죽지 않고 계속 응전하는 모습에서는 홍콩식 갱영화의 사나이 우정을 그리려고 했을까.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는 왜 전쟁영화에 나왔는지는 묻고 싶지도 않다. 너무 두서 없는 모습들 때문에 감동적인 실화를 여기저기 돈으로 각색만 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6·25를 이용한 한 철, 장삿속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 말미에 초로의 노인이 된 생존 학도병의 눈물과 가늘게 떨리는 증언이 한없이 작고 힘없이 들리는 것은 엉성한 스토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시작할 때 보여 주었던 학도병들의 사진 만큼 빛바랜 과거가 되어 버린 6·25여서 그랬을까? 지금도 거리엔 ‘대한민국’이라는 외침이 힘차게 들린다. 생존 학도병의 ‘대한민국’과 거리 젊은이들의 ‘대한민국’은 같은 나라일까? 영화도 현실도 혼란스럽기만 한 2010년 유월이다.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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