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모터싸이클 다이어리

▲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월터 살레스 감독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는 국내에 출시된 라틴아메리카 관련 영화중에서 국내 영화팬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작품일 것이다. 체 게바라의 일기 ‘첫 번째의 위대한 여행’과 알베르토 그라나도의 책 ‘체와 함께 한 남아메리카’에 바탕을 두고 제작된 이 영화는 여행 중 일어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쿠바 혁명에 참여하기 이전의 의대생 체 게바라가 어떻게 사회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여행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험난한 현실을 발견하는 두 젊은이를 다룬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겠다는 순진하고 낭만적인 생각으로 모터싸이클을 타고 1만 4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이내 웅장하고 화려한 남아메리카의 경치 뒤에는 저개발과 하층민들의 무한한 고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이 두 젊은이는 나중에 ‘체’라는 별명으로 쿠바 혁명을 이끌게 될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나병환자 전문가로 활동하게 될 알베르토 그라나도이다.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점차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된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이후 그들의 삶은 바뀐다. 특히 이 여행에서 에르네스토의 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은 마리아테기의 마르크스적 관점을 지니고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우고 페세 박사이다. 이 영화에서 에르네스토는 페세 박사의 집에 머물면서 농민과 원주민의 역할을 재설계하는 마리아테기의 ‘페루 현실 해석에 관한 일곱 편의 에세이’를 읽기도 한다.

이 영화에는 그들이 현실과 충돌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가령 칠레의 로스앙헬레스 마을에서 에르네스토는 아주 가난한 여인을 치료하려고 하지만, 그녀가 곧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또한 페루의 쿠스코와 마추픽추에서 원주민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극단적 빈곤과 소외를 깨닫고, 그런 것은 스페인의 정복과 식민 이후부터 역사적으로 뿌리박힌 상황임을 간파하기도 한다.

한편 칠레의 아카타마 사막을 지날 때, 그들은 일자리를 구하는 농민 부부를 만나서 밤새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농민 부부는 자신들이 약간의 메마른 땅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지주라는 사람이 갑자기 와서 그들을 내쫓았다고 말한다. 그 땅에서 쫓겨나자 그들은 아이들을 친척에게 맡기고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게다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경찰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들은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수많은 위험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광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농민 부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두 젊은이들에게 왜 여행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에르네스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모르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저 여행을 목적으로 여행한다고 대답한다. 대화는 계속되고 농민들은 노동자들이 겪는 탄압과 폭력적 상황을 들려준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노동력을 착취하는 다국적 기업의 구조적 폭력과 마주치고, 에르네스토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추키카마타 광산에서 일하게 되는지 목격하면서 분노한다.

이 밖에도 이 영화에서는 아마존에 고립된 나환자촌과 그곳에서 존재하는 의사와 수녀, 그리고 환자의 차별 등도 등장한다. 이렇게 여행을 통해 보고 배우면서,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불평등과 그 해결책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특히 체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오자 ‘여행 메모’를 작성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메모를 작성한 사람은 다시 아르헨티나 땅을 밟으면서 죽었다. 이 글을 정리하고 다듬는 사람, 즉 ‘나’는 내가 아니다. 적어도 내면의 ‘나’는 과거의 나와 동일하지 않다. 나는 우리의 아메리카로 정처 없이 방황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는 1950년대의 남아메리카 현실을 보여주지만,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는 오늘날에도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체 게바라가 “내 입은 내 눈이 이야기한 것만을 들려준다.”고 말하고 있듯이,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깨닫게 된 그의 사상은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오늘날의 대안세계화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기에 그를 현실에 눈뜨게 만든 이 여행의 의미는 현재에도 유효하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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