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중국속 민족혼을 찾아 (1)백두산
북경의 폭염·연길의 대홍수 등 악천후로 험난한 여정
변화무쌍한 날씨 쉽게 속살을 허락않는 ‘민족의 영산’
가슴 벅찬 감동 품은채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 돌려

▲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길. 맑은 하늘 아래 천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일년 중 그다지 많지 않다.
지난 여름, 교과서 탐방단을 이끌고 중국과 백두산을 다녀왔다. 여행 경로는 북경을 거쳐 연길로 달려가 백두산 정상에 오르는 것. 그러나 자연과의 사투 속에서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한마디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경험하고 돌아왔다.

우리는 먼저 북경에 도착했다. 북경은 거의 찜질방 수준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살인적인 더위에 모두가 기진맥진했다. 북경 도착 첫날 황제의 권력에 버금가는 영화를 누렸던 서태후의 여름 별장인 이화원에 갔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정말 거대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날은 우주에서도 보이는 인간의 최장 건축물이라는 만리장성을 오르는 일정으로 시작하였다. 중국 공산당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은 ‘사나이 대장부로 나서 만리장성을 오르지 못한 이가 어찌 대장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만리장성 예찬론을 펼친 곳이다. 사람의 뼈와 살로 쌓았다는 조금은 섬뜩한 이야기가 있는 장성에 올라보니, 안갯속에서 어우러진 산세에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우리는 오전 만리장성 방문을 마치고 중국의 심장부인 천안문 광장과 명, 청나라의 황실이었던 자금성을 둘러보았다. 서울의 궁궐 답사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에 놀랐으며, 무시무시한 인파에 역시나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 지난 달 백두산 천지에서 촬영한 현대예술관 교과서탐방단 기념사진.

무더운 북경에서의 1박2일을 보내고 저녁 비행기로 연길을 향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2시간여를 비행하다 연길의 대폭우로 인해 돌아가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심양에서 하루를 묵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심양 땅에 떨어져 오도가도 못하게 된 일행은 다행히 중국항공사의 선처로 좋은 호텔에 아침까지 먹고는 다음날 아침 다시 여행길에 나설 수 있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연길은 가히 전쟁터였다. 70여년만의 대홍수로 곳곳 도로가 유실됐다. 북한 땅이 바로 앞 마을처럼 가깝게 보인다던 두만강 물이 불어나 바다만큼 넓게 느껴졌으며, 일정 내내 비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일행은 빗속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우리가 지나간 지 1시간 후에 뒷 도로들이 유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백두산을 향하는 도로는 조금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도로 양옆으로 주민들이 살던 마을이 물에 잠겨 사람들이 물을 퍼내는 모습들이 보였다. 비는 더욱 세차게 몰아쳐 도로를 점거하려고 할 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길을 재촉해 우리는 백두산을 향해 차를 몰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 울창한 숲 뒤편으로 웅장한 장백폭포가 보인다.

저녁때가 다 되어 식사를 하려고 마을에 들렀는데 마을은 온통 정전으로 촛불 속에서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이재민들처럼 촛불 속에서도 출출한 배는 어찌나 밥을 맛있게 먹도록 만들어 주는지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이후 숙박지를 향해 줄곧 달려 이도백하의 한 호텔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묶은 호텔에는 곧바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서 어둠 속에서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되었다.

다음날 우리는 백두산엘 오르게 되었다. 하늘의 도움인지 연길에서의 2일차는 맑고 시원한 날씨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북경의 날씨와는 딴판으로 한국의 가을날씨 같았다. 이른 새벽부터 백두산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버스로 이동하다가 잠시 내려서 매표를 하고는 지프차로 갈아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지프차를 운전하는 중국인들의 화려한 질주 속에서 차안에 있는 우리들은 손잡이를 찾아 헤매야 했다. 다른 이들도 우리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차들의 절반 이상이 손잡이가 없어지거나 끊어져 있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낭떠러지를 빠른 속도로 차고 올라가는 차량들을 보니 가히 이곳이 만만디의 나라가 맞는지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완벽한 코너링과 속도로 채 15분이 안되어 벌써 정상에 도착하였다. 지프차를 내려 바라본 백두산 정상은 주변이 온통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천지’라고 적힌 커다란 비석을 발견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몰려들어 사진 찍기에 바빴다.

실제로 천지의 아름다운 호수와 기암괴석들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천지에 왔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비석을 부여잡고 사진 찍는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대는 순간 우리 주변에 온통 한국인들뿐이었다. 민족의 영산답게 한국인들의 애국심은 한껏 고취되어 심지어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록 천지의 아름답고 웅장한 자태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천지에 올랐다는 자부심에 모든이들은 감격에 겨워 연신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고 필자도 참가자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머물 여유도 없이 우리는 백두산 천지를 내려와야 했다. 재촉하는 중국인 가이드의 성화로 인해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백두산에 돌을 하나 쌓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더욱 쏜살같이 내려오는 바람에 백두산의 풍경을 채 감상하지도 못한채 내려오게 되었다.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어 바로 길을 재촉해 장백폭포로 향했다. 장백폭포로 향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버스를 2번이나 옮겨 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계속 멀리보이는 천지를 향해 있었다. 안개가 걷혔는지 하는 호기심에 한껏 아쉬운 눈들이었다. 장백폭포까지 가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 이석민 현대예술관 문화기획과 교과서탐방 운영자

다리를 건너고 누런 유황가스를 뿜어내는 온천지대를 지나 장백폭포에 다다랐다. 힘차게 물을 뿜어내는 모습이 가히 웅장함 그 자체였다.

백두산은 관광객들에게 시간을 많이 내어주지 않았다. 하루 빠듯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려야 겨우 천지와 장백폭포 두 곳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중국측은 백두산 관광객 대부분이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안내방송은 한 마디도 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 방송만 틀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백두산 관광을 꿈꾼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교과서 속 사진으로 늘 보아오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었지만, 그 감동만은 예상을 너머 너무나 강렬하게, 또한 오랫동안 가슴 속에 맴돌게 된다.

이석민 현대예술관 문화기획과 교과서탐방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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