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노센트 보이스

‘이노센트 보이스’는 엘살바도르 내전을 겪은 ‘오스카르 또레스’라는 아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삼는 이 작품은 열두 살이 되면 정부군에 의해 징병되거나, 아니면 게릴라가 되어야 했던 엘살바도르 아이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보여준다. 여기서 루이스 만도키 감독은 강력한 반전 메시지나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에,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을 통해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잔잔히 전달하면서 관객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간다.

엘살바도르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으로 인해 12년간의 내전(1980~1992)을 겪는다. 이 내전은 군사정권 수립 이후 정부가 농민들을 조직적으로 탄압하면서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이에 대항하는 좌파 지식인들과 농민들로 이루어진 게릴라조직(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의 대립으로 내전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 차바가 비를 맞으며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목말라 죽겠어요. 발도 아프고 신발에 돌이 들어갔나 봐요. 우릴 죽이려나 봐요. 우린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우릴 죽이려는 거죠?”라고 되뇌는 차바의 목소리를 통해 내전 한 가운데 놓인 아이들을 입장을 대변한다.

차바가 살고 있는 ‘꾸스까따싱고’라는 가난한 마을은 정부군과 게릴라의 교전이 잦은 곳이다. 밤낮으로 이어지는 양측의 교전으로 무고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는 일상이 반복된다. 내전이 시작되면서 차바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동생과 함께 남아 삶을 꾸려간다. 어머니가 만든 옷을 팔러나갔던 차바는 장난기 가득한 버스기사의 덕에 일자리를 얻고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한다. 어느 날, 갑작스레 정부군이 학교로 난입하여 12세가 된 아이들을 병사로 만들기 위해 끌고 간다.

내전이 악화되면서 사촌누나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베토 삼촌과 함께 목격한다. 좌익 게릴라인 베토 삼촌이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면서 게릴라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작은 라디오를 건네준다. 마을의 젊은 여자를 겁탈하기 위해 잡아가고, 베토는 금지곡을 듣다가 신부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마을 중심부가 다시 게릴라와 정부군의 교전지가 되고, 교회에 게릴라들을 들였다는 이유로 신부는 군인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다.

베토 삼촌의 도움으로 차바와 마을 남자아이들은 지붕위에 누워 징집위기를 모면한다. 차바의 12번째 생일날, 가족과 친구들은 생일파티를 준비하지만, 차바는 기쁘기보다 두렵기만 하다. 징집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이 숨었었다는 것을 안 정부군은 다시 마을 아이들을 잡아간다. 겨우 지붕으로 피한 몇몇 아이들은 별을 세며 밤을 보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반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지만, 차바가 발견한 것은 이미 불타버린 친구의 집과 흔적뿐이었다. 크게 슬퍼하던 차바는 친구들과 결국 게릴라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나지만, 게릴라를 습격한 정부군에게 결국 체포된다. 함께 체포된 친구들은 총살을 당하고, 차바는 게릴라들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다. 결국 불에 탄 마을로 돌아온 차바를 위해 어머니는 마지막 생계수단이었던 재봉틀을 팔아 미국으로 혼자 떠나보내게 된다.

‘이노센트 보이스’는 내전을 치르는 게릴라와 정부군의 문제들과는 무관한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내전으로 인한 징집을 피해 게릴라가 되어 다시 총을 들어야만 하는 아이들의 끝없는 두려움의 목소리다. 두려움과 억압은 내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도처에 산재해 있다. 금지된 방송을 듣거나, 여성들을 끌고 가는 군인들을 저지하려고 하거나, 친구를 구하려고 군인에게 돌을 던지거나, 언제 어떤 상황이건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이노센트 보이스’는 내전과 소년병의 문제를 다룬 영화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엘살바도르 게릴라세력과 공산세력이 연계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엘살바도르 군사독재정권을 ‘민주주의’수호와 ‘인권보호’를 명목으로 지원하였다. 이런 명목들은 당시 정정이 불안했던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미국이 우익정부를 지원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엘살바도르 내전기간동안 7만5000여 명이 생명을 잃었고, 이들의 대부분은 무고한 시민들이었으며, 엘살바도르 사회는 심각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과연 미국이 원했던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무엇이었을까?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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