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Gestalt(게슈탈트)­저마다의 머릿속에서 완성되는 도시

▲ 로마 성 베드로 광장. 열주(기둥을 연속되게 배열)를 통해 거대한 스케일의 광장공간을 만들었다. 광장공포증을 조성함으로써 앞에서는 개인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스케일의 심리성을 이용한 것이다.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개개인이 지각하는 것은 전체 장면중 일부분이며 지각된 대상에 의미붙여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것”

어릴 때 친구들과 심리 테스트를 한답시고 흑백 그림을 가지고 술잔이다 아니다, 마주본 두 얼굴이다 하면서 들었던 단어가 ‘게슈탈트(Gestalt)’라는 단어였다. 미인의 자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것이 흉측한 마녀의 얼굴로 둔갑해 보이는 경험도 해 보았을 것이다.

오늘 이야기 주제는 도시에 있어서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과 관련된 이야기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기본은 주로 지각심리학 영역, 그것도 특히 시지각적인 경험에 있어서 군화(群化)-묶어서 보기-와 관계가 있다. 정리해 보면 근접의 법칙, 유동(類同)의 법칙, 폐합(閉合)의 법칙, 좋은 연속의 법칙, 좋은 모양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풀어쓰면 이렇다.

▲ 일명 ‘놀리의 지도(nolli’s map)’에서 본 로마 판테온 부근의 내외부 공간의 상호연결성. 건물과 외부공간을 역상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느끼는 외부공간과 그 연속선상에서의 반외부공간의 연계성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어떠한 형상들을 ①근접한 것끼리 ②유사한 것끼리 ③닫힌 모양을 이루는 것끼리 ④좋은 연속을 하고 있는 것끼리 ⑤좋은 모양을 만드는 것끼리 한데 모아 보려고 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부분의 합은 총합의 이상의 것이라는 전체주의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부분들을 따로 분리시켜 볼 수 없으며 전체를 분리시키면 전체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전경과 배경의 개념을 통해 인간의 지각을 설명하고 있는데, 전경이란 앞으로 돌출되어 인식하는 것이며 배경이란 인식되어지는 전경 뒤의 장면이다. 실제로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전체 장면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장면 중 일부를 지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지각되어진 전경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각된 대상에게 의미를 부여한 대로 지각되어지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미녀와 마녀가 함께 있는 그림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주관적으로 의식하려고 하는 미녀를 생각하면 미녀가 전경이 되고 나머지의 그림이 무의미한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의미 부여는 개인의 경험 관심 흥미 등 자신의 주관적 관심을 통해 집중하는 것을 지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주관적인 전경을 또한 유사한 것끼리, 완성된 모양으로 분리시켜서 완성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 로마 판테온의 포티코(입구 현관의 열주공간) 전경. 놀리의 지도에서 보듯이 전면의 외부공간과 포티코의 외부로 열린 열주공간은 서로 연속적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도시의 외부공간, 건물의 내부공간을 서로 풍성하게 만든다.
자료에 따르면 인식에 있어서 관찰자의 생각이 반영된다는 생리학적 증거로 눈의 망막에서 뇌로 흐르는 신경 신호보다 뇌에서 망막으로 흐르는 신경이 더 발달되어있다고 한다. 정지되어 있지 않고 보행자에게 연속적인 시지각 경험을 제공하는 도시공간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이번 편은 풍성한 그림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그림1)의 로마 성 베드로 광장은 열주(기둥을 연속되게 배열)를 통해 거대한 스케일의 광장공간을 만들었는데, 게슈탈트 원칙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기둥열을 우리는 하나의 면으로 인식함으로써 광장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그 스케일을 거대하게 만들면서 광장공포증을 조성함으로써 신 앞에서는 개인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심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게슈탈트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일명 ‘놀리의 지도(nolli’s map)‘라고 하는 (그림2)는 건물과 외부공간

▲ 런던의 리젠시 스트리트. 게슈탈트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도시공간에서 직선의 가로보다 굽은 가로의 형태를 지각적으로 더욱 풍성하고 역동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을 역상으로 표현하면서 도시공간에서 지각되는 외부공간과 반외부공간, 건물내부공간과의 연결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이다. 과연 (그림3)의 로마 판테온 전면의 외부공간과 판테온 포티코(입구현관 공간)의 외부로 열린 열주공간은 서로 연속적으로 인식됨으로써 도시의 외부공간, 건물의 내부공간을 서로 풍성하게 만든다.

한편, 현대 도시풍경에 있어서 저층부의 가로연속성이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가로연속성은 사람들의 보행성과 도시생활의 친밀함을 지원해주는 데에 필수적이다. (그림5)와 (그림6)의 일본 고베시 경관협정 시범거리의 도시경관 가이드라인은 가로경험을 위해 건물의 저층부를 일정한 건축선으로 맞추고 1층부 가로를 일정부분 셋백(set-back)시켜 보행자들을 위한 연속된 공간 층을 확보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 건축물의 저층부 높이를 31m 정도로 제한하고 그 상부의 고층부는 도로에서 하늘이 보이도록 물러서 건축하도록 고층부 건축선도 따로 지정해 놓았다.

▲ 일본 고베시 경관협정 시범거리의 가로경관. 건축선, 저층부 셋백(뒤로 물림), 건물 고층부 건축선 후퇴 등 도시풍경의 일관성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지정하였다.
특히 1층부의 경우 건물마다 연속적인 열주공간 등을 만들도록 유도해 가로변의 연속적 보행감을 느끼도록 한다. 필자가 현장에서 느끼기에 과연 매우 잘 정리된 도시 디자인의 결과로 느껴졌고 경관협정이 매우 잘 지켜지는 것도 놀라웠지만 좀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저층부의 높이 한계선도 도로에서 보면 일정하고 고층부의 건축선도 정확하게 맞는데 이상하게도 필자의 느낌으로는 조금씩 흔들어 놓고 싶은(?) 장난기가 동하기도 했다. 보행자 인식에 있어서의 선택적 지각의 단서가 적어서 그렇지 않을까? 도시 디자이너로서의 숙제를 안고 온 기분이었다.
▲ 고베시 경관협정 시범거리. 이 지역에서는 반드시 가로에 면한 저층부의 공간을 열주공간 등을 통해 연속시킴으로써 보행자가 시지각적인 연속성을 느낄 수 있도록 건축을 유도한다.

필자는 울산 원도심에서 게슈탈트 원칙을 생생히 경험한다.(그림7) 설계교육 프로젝트와 한·일 워크숍을 대지로 원도심을 채택하고 여러차례 답사를 다녔다. 그 뿐 아니라 원도심에는 필자가 좋아하는 닭발집을 비롯해서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밀조밀하고 불규칙한 거리풍경과 어울리는 맛집들이 많아서 즐겨 다니는 편이다.

원도심에 가서 처음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게임처럼 하는 것이 있다. 현지 지도를 들려주고 이전의 성곽 흔적, 즉 해자(수로)의 흔적을 찾아 지도에 표시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지도상에도 불규칙한 선들의 흔적들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현실세계의 차원에서 직접 발로 뛰면서 움직이는 주체로서 대상공간에서의 건물과 땅의 만남, 건물들의 파편들, 작은 길. 수로의 흔적들, 이런 단서들을 경험하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 울산 원도심 공간들. 울산 원도심에서 게슈탈트 원칙을 생생히 경험한다. 보물찾기를 하듯 내게 인식되는 단서의 연속성을 따라 다니다 보면 어느덧 옛 시간의 궤적을 그리게 된다.

옛 자취에 오버랩된 근현대의 도로망, 규칙적인 도시조직과 건축물들 가운데에서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부서진 건물들의 불규칙함의 ‘이질성의 규칙’들을 찾아가려는 본능을 좇는다. 재미있는 것은 누구에게는 건물 벽체의 형상들이, 누구에게는 작은 골목에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서 보이는 하늘 형태들이, 누구에게는 골목 바닥의 구불구불한 모양이, 또 누구에게는 수로의 흔적인 작은 배수구들의 배열이 각자의 머릿속에 ‘패턴화’되어 규칙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환경 속에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전체감각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도시탐험에 있어서 우리에게 흥분과 즐거움을 더한다. 내게만 보이는, 나이기 때문에 느끼는, 그러한 도시의 풍경들이 내게로 와서 ‘완성되는’ 느낌…느껴본 사람은 안다. 나만의 도시를 소유한다는 기분을….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게슈탈트(Gestalt)란 ‘형태, 형상’을 뜻하는 독일어로, 형태심리학의 중추 개념. 19세기께 C. 에렌펠스에 의해 정의되었다. 형태심리학자들은 심리현상은 요소의 가산적 총화로는 설명할 수 없고 전체성을 갖는 동시에 구조화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성질을 게슈탈트라 하였다.
*게슈탈트 심리학(Gestalt psychology)
*게슈탈트 심리치료 (Gestalt theoretical psychotherapy)
*게슈탈트 요법(Gestalt therapy)
-한국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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