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중앙역

‘중앙역’은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월터 살레스 감독의 작품으로,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가는 조슈에와 그 여정에 동행하게 되면서 자신을 되찾는 노처녀 도라의 인간 드라마다. 이 영화는 브라질 사람들의 삶을 다루지만,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사회문제와 철학적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한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중앙역에서 도라는 편지를 대필해 주며 살아간다. 도라는 산전수전을 겪은 탓에 세상을 매우 냉소적으로 보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가정을 버리고 떠난 남편에게 화가 치민 아나와 그의 아들 조슈에는 글을 쓸 줄 몰라서 도라에게 편지를 부탁한다. 일과가 끝난 후 도라는 손님들에게 부쳐주기로 약속한 편지들을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이웃친구 이레니와 함께 그 편지들을 장난 삼아 읽고 찢어버리거나 서랍 속에 보관한다.

다음날 아나는 조슈에와 다시 편지를 쓰기 위해 도라를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버스에 치여 사망한다. 갑자기 홀로 남겨진 조슈에는 중앙역에서 노숙자처럼 지내게 된다. 조슈에는 아버지 제수스에게 다른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하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한다. 중앙역에는 조슈에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입양기관에 아이를 팔기 위해서다. 도라는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아이라고 하면서 조슈에를 ‘선점’하고, 자기 집에 하루 데려갔다가 입양기관에 넘기고서, 그 돈으로 텔레비전을 사온다.

그러자 이레니는 도라가 조슈에를 팔아넘긴 것을 알아채고서,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장기 매매에 이용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도라는 다음날 조슈에를 구해 내고, 조슈에와 함께 그의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러나 그 따분한 여행에 지친 나머지, 도라는 버스기사에게 돈을 주고 조슈에를 부탁하지만, 조슈에는 도라를 따라 버스에서 내린다.

천신만고 끝에 두 사람은 그의 아버지가 산다는 곳에 도착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는 얘기를 듣고 크게 낙담한다. 돈이 다 떨어지자 그들은 도라의 재주를 이용해 시장에서 성자에게 편지 쓰는 일로 돈을 번다. 이들이 다시 ‘세상의 끝’이라는 아버지의 새 주소로 찾아오지만, 거기서도 이사 갔다는 얘기만 듣는다. 우연히 그들은 조슈에의 이복형제인 이자예쉬와 모제쉬를 만나게 된다.

이 둘은 조슈에와 마찬가지로 글을 읽을 줄 모른다. 형제는 도시로 아나를 찾으러 떠난 아버지가 이미 집에 돌아와 있을지도 모를 아나에게 보낸 편지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를 도라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도라는 이들을 위해 편지를 읽어주면서 다시 한 번 조슈에와 이들이 형제관계임을 확인한다. 다음날 이른 새벽 도라는 조슈에를 형제들에게 남겨두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다.

‘중앙역’은 여러 상징들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등장인물들은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인 조슈에(여호수아)와 도라가 찾아나선 아버지의 이름은 제수스(예수), 조슈에의 이복형제들의 이름은 이자예쉬(이사야)와 모제쉬(모세)다. 이들은 제수스를 찾으러 왔거나,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사람, 혹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사람이다. 조슈에와 도라가 아버지 제수스의 집인 줄 알고 방문하지만 거기에는 동명이인이 살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없다. 여기서 ‘동명이인’인 다른 제수스와 이사 가고 없는 제수스는 브라질의 상황에서 가톨릭이나 개신교에게 기대되는 종교적 역할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월터 살레스 감독은 현대사회의 지배관계와 사회문제들을 영화를 통해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편지’라는 도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인종 사회인 브라질에서 백인이며 전직 교사로서 엘리트였던 ‘도라’는 ‘글을 쓸 줄 아는 능력’을 통해 문맹인 약자들을 물질적으로 이용하고 지배한다. 한편 역내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비원에게 살해되는 좀도둑, 혼자 남겨진 조슈에와 아동 인신매매에 대한 암시 등은 거리의 아이들에 대한 문제와 사회폭력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는 복잡하고 비인간적이며, 이기심과 약육강식만이 존재하고 속도가 중요시되는 도시의 대표적 공간인 ‘중앙역’에서 시작하여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삶이 존재하는 시골에서 끝난다. 도라와 조슈에의 여행은 비인간적이고 불신이 가득한 도시속의 관계에서 시작하여 시골로 접어드는 긴 여정을 통해 점차 친밀한 인간적인 관계로 변화한다.

‘중앙역’은 브라질 사회의 불편한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결코 마음을 무겁게 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련과 여정을 통한 인간성 회복의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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